雪렌다, 가을과 겨울의 길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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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렌다, 가을과 겨울의 길목
  • 충청투데이
  • 승인 2016년 11월 28일 18시 55분
  • 지면게재일 2016년 11월 29일 화요일
  •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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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 http://blog.naver.com/springlll8
△단풍 구경 가서 만난 첫눈-만추를 즐기기에 딱 좋은 주말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달린 빨간 단풍잎을 보기엔 늦은 감은 있지만, 떨어진 잎이 수북이 쌓인 카펫을 밟는 것도 가을을 즐기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주말은 한정되고 가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은 너무도 많으니 떨어진 낙엽이라도 밟아 보겠노라고 떠난 여행에 난데없이 눈이 왔다. 11월에 눈이라니! 부산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늦었어, 두시 반이야! 신부동에 도착하니 시계는 두시 반을 가리켰다. 큰일이다. 신부동 신세계백화점(버스터미널) 앞에서 서둘러 400번을 탔다. 꽁꽁 언 손이 사르르 녹는다. 늦었다는 생각은 잠시 잊은 채 고개를 까닥까닥 흔들며 잠이 들었다. 추운 날 버스를 타면 늘 이런 식이다. 다행인 건 목적지에 다다르면 귀신같이 잠에서 깬다는 점이다. 촉은 무서운 것이니. 그날도 그랬다. 눈을 살짝 뜨니 시내를 조금 벗어난 듯 보였고, 눈은 시내보다 조금 더 쌓여있었다. 단풍 여행은 어느새 눈 구경으로 바뀌어갔다.

△여행 노트-독립기념관 가는 법: 신부동 신세계 백화점 (종합버스터미널) - 381,382,383, 390,391,400,402버 승차 - 독립기념관 하차 (50분 소요), 독립기념관 입장료: 무료, 단풍나무숲길: 독립기념관 들어가자마자 우측으로 직진 - 이후 표지판 따라서 이동, 단풍나무숲길 소요 시간: 대략 1시간 (길이 가파르지 않아서 걷기 좋음) 독립기념관에서 단푸나무숲길 가는 방법은 사진 순서대로! 입구를 지나서 우측을 봐요. 표지판을 따라서 우측으로 올라가요. 직진을 해요. 직진하면 이런 표지판이 나와요. 세시 반쯤이 되어서 독립기념관에 도착했다. 이미 눈은 그친지 오래였다. 손끝이 시린 추운 날임에도 사람들이 제법 있었지만, 단풍나무숲길로 향하는 사람은 우리 둘뿐이었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미끄럽거나 가기 힘든 길이면 바로 돌아갈 마음이었다. 독립기념관 안에도 볼거리들이 천지일 테니.

△이만큼 걷기 좋은 길-우리의 걱정이 날아간 건 일분도 걸리지 않았다. 떨어진 낙엽이 가을이 끝나고 있음을 알렸고 하얗게 내린 눈이 겨울의 시작을 말해줬다. 일렬로 세워진 단풍나무와 잘 정비된 길이 이어졌다. 가을에 왔으면 더 예뻤겠지만, 눈이 살포시 이 길도 너무도 예뻤다. 더 많은 눈이 내렸을 때도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떨어진 단풍 위에 쌓인 눈, 가을과 겨울을 한꺼번에 선물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2000그루의 정성-흑성산 자락에 자리 잡은 독립기념관을 둘러싸고 잘 정비된 단풍나무숲길은 1977년 독립기념관 직원들이 2000그루의 단풍을 심어 조성된 길이다. 현재 단풍나무 수만 해도 수 천 그루가 된다고 하니 가을에 오면 풍경이 경이로울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가을이 끝났다고 아쉬워할 필요가 없다. 겨울도 이리 멋진걸. 눈 내리는 날도 걷기가 좋은 것 같다.

△중간에 하산-1,306m에 다다랐을 때쯤 표지판이 우리를 유혹한다. 단풍나무길을 더 걸으려면 1,858m를 더 걸어가야 했고, 정비되지 않은 길로 가면 700m만 가면 5,6전시관으로 바로 갈 수 있다. 숲길을 더 걷고 싶었지만, 시계는 다섯시를 향해 가고 있었고 날은 점점 더 빠르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며, 표지판이 가리키는 길로 향했다. 이번 여행의 콘셉트는 떨어진 낙엽 밟기, 하지만 뜻하지 않는 첫눈을 만났고, 그 덕분에 우리의 여행은 손끝이 시린 겨울 여행이 되었다. 날씨 운이 좋지 않다는 건 설레는 일이다. 뜻하지 않는 풍경을 만날 수 있으니! 독립기념관 단풍나무숲길 여행기 끝!

△혹시 미친 개나리 알아?- 길 가다 우연히 만난 미친 개나리 관찰 중. 너는 미친 개나리 이 엄동설한에도 살아보겠노라고 계절 감각도 상실한 채 노랗게 꽃이 핀 미친 개나리.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정민을 좋아했던 미자, 하지만 정민은 미자에게 고백을 망설였다. 좋은 친구를 잃을까 봐. 그러다 마음을 먹고 미자에게 고백하러 가는 길, 현우가 정민에게 다가가 말한다. 뻔뻔하지만 절실한 마음을 담아서. "난 내가 어떤 놈인지, 내가 어떤 맘인지, 아직 미자씨한테 보여주지 못했어요. 적어도 그럴 수 있는 시간만큼은 나한테 줘야 해요." 《미친 개나리와 두 남자》. 결국 정민은 고백을 하지 못했고, 정민이 미자에 대한 마음이 절실해질 때쯤 미자의 마음은 현우를 향한다. 사랑은 타이밍. 작가는 두 남자의 마음을 혼자 일찍 핀 개나리로 표현했다. 미친 개나리로. 나는 이렇게 계절 감각을 상실한 꽃을 보면 두 남자의 미친 개나리가 생각난다. (이 글은 11월 28일에 작성됐습니다-이 사업(기사)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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