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속 사연] 곤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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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속 사연] 곤죽
  • 충청투데이
  • 승인 2017년 01월 10일 19시 48분
  • 지면게재일 2017년 01월 11일 수요일
  •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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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곤죽. 엉망이 되어 갈피를 잡기 어려운 상태 또는 물 빠진 낙지처럼 축 늘어진 모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얼마나 술을 퍼 마셨으면 곤죽이 되었나", "며칠 전 온갖 곡식으로 쑤어 놓은 죽이 무더위에 곤죽이 되어버렸네."

순 우리글 '곤'과 한자어 '죽(粥)’이 합쳐진 글이다. ‘곤’은 '곯다'의 관형어다. '곯다'는 '속이 물크러져 상하다' 혹은 '은근히 해를 입어 골병이 들다'라는 뜻이다. '곯은 달걀'을 '곤달걀'이라 한다. '죽'은 '곡식을 물에 오래 끓여 알갱이를 무르게 만든 음식'이다. 씹지 않고 그대로 삼켜도 위장에 무리가 없다. 그러니까 '곤죽'은 '곯고 썩어 먹지 못하는 죽'이다. '곤죽'은 주로 부정적인 상태를 비유적으로 일컫는 데 사용된다.

곤죽이 된 나라가 있다. 불행히도 대한민국, 우리나라다. 누구도 눈치 못 채게 슬그머니 그리고 전혀 입조차 댈 수 없는 곤상태가 됐다. 나라 곳곳이 곯고 부패했다. 어디서부터 수선, 수리해야 하고, 어떻게 환부를 도려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백성들은 무언가에 홀린 기분이다. 모두 황당하고 우왕좌왕이다. 누가 나라를 이처럼 곤죽으로 만들었는가.

참으로 어이없게도 대통령과 그 주변, 이른바 비선실세라 한다. 그들은 신선하지 않은 이미 썩은 재료를 죽 만들기에 마구 사용했다. 열심히 끓여봐야 먹지 못하는 곤죽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나라가 온통 음식물 쓰레기와 폐기물로 뒤덮인 느낌이다.

그러나 곤죽의 주범들은 "내가 뭘 어찌했다고"라며 발뺌이다. 할 일을 방기(放棄)한 그 잘난 의원 나리들은 난리도 아니다. 뒤늦게 어수선을 떨지만 변죽만 울릴 뿐이다. 자다가 남의 다리 긁고 시원하다고 말하는 꼴이다.

작금 상황은 곤죽이 아닌 국가 유린이 더 적확하다. 국격을 모독하고 인격을 모욕한 셈이다. 그러나 백성은 총칼이 없다. 그저 바람 앞에 나약한 촛불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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