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진섭 "발라드는 30년 판 전공…앞으로 30년 더 노래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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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진섭 "발라드는 30년 판 전공…앞으로 30년 더 노래해야죠"
  • 연합뉴스
  • 승인 2017년 07월 01일 13시 08분
  • 지면게재일 2017년 07월 01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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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부터 데뷔 30주년 투어·대중 참여한 기념 앨범도 제작
▲ [J엔터테인먼트 제공]
▲ [J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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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엔터테인먼트 제공]
"음악인이 한 장르로 일가를 이루기란 쉽지 않죠. 발라드 하면 변진섭이란 인식이 각인되도록 하려면 아직 멀었어요."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은 변진섭(51)은 가수로서의 길에 대한 소신이 분명했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를 관통하며 '발라드의 왕자'로 불린 그가 "내게 발라드만 고집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라며 "아직 멀었는데 한눈팔 정신이 어디 있겠느냐"고 하니 말이다.

최근 마포구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변진섭을 만났다.

경기도 용인에서 부인, 두 아들(고1, 중2)과 사는 그는 1일 오후 7시 모교인 서울 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 열리는 30주년 공연 '타임리스'(TIMELESS) 연습을 위해 합정동을 찾았다. 서울을 시작으로 내년 5월까지 투어가 예정돼 있다.

대표적인 밀리언셀러 가수였던 그의 히트곡은 대다수가 발라드였다. 이전부터 발라드란 장르가 있었지만 '발라드 가수'란 용어는 변진섭부터 가요계에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경희대 농학과 재학 시절 캠퍼스 그룹 '탈무드'로 활동한 그는 1987년 MBC '신인가요제'로 등장한 뒤 단박에 스타덤에 올랐다.

1988년 1집 '홀로된다는 것'과 1989년 2집 '너에게로 또다시'의 수록곡이 대거 히트하며 카운트된 것만 각각 판매량 180만장, 240만장을 기록했다.

그는 "파격적인 댄스 등으로 변화를 주는 것은 제작자나 이슈가 필요한 사람들의 욕심"이라며 "정말 안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진로를 택할 수는 있지만 난 발라드를 좋아했고, 따로 하고 싶은 장르가 있던 것도 아니고, 진로를 바꿀 만큼의 문제도 없었다. 전공을 바꾸긴 쉽지 않으니 내 자식이라고 여기고 지켜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이돌 가수들이 장악하면서 한동안 남자 솔로 발라드 가수들이 설 자리가 없었다고 하자 관록 있는 가수다운 답변이 나왔다.

"제가 데뷔할 때는 발라드가 주류가 될 정도로 트렌드였지만, 1990년대 서태지로 시작된 트렌드가 K팝으로 이어지며 가요 시장을 지배했죠. 중요한 것은 발라드의 가공할 위력이 '트렌드 아닌 트렌드'란 점입니다. 시장의 대세가 있어도 빠지거나 사라지지 않고 묘하게 존재해왔죠.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린다면 바탕색 같은 장르로 침체기는 없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에게도 노선이 다른, 경쾌한 리듬의 '희망사항'이란 빅히트 곡이 있다. 2집의 마지막 트랙인 이 곡은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란 재미있는 노랫말이 입으로 퍼지며, 2집의 타이틀곡인 '너에게로 또다시'의 인기를 눌렀다.

"KBS '가요 톱텐'에서 '너에게로 또다시'가 1위를 했는데 그다음 주 '희망사항'이 1위를 하고선 5주 연속 정상을 차지했어요. 비운의 '너에게로 또다시'는 짠한 마음 때문에 아끼는 곡이죠. 중독성 강한 '희망사항'은 제 여러 노래를 잡아먹은 포식자지만 여전히 공연장에서 팬들이 즐거워해 주니 '시그니처 곡'이라고 해도 서운하지 않아요. 하하하."

'둘리', '섭섭이' 등 재미있는 별명에 입담도 강한 그지만 예나 지금이나 TV 출연에는 적극적이지 않다.

그는 "전성기 때는 TV에 나오다가 지금 안 나온다고 생각하시는데, 음악 프로그램 활동이 전부였다"며 "조용필, 이문세 형의 영향도 있었고, 내가 그 분야에 일가견이 있으면 모를까, 가수는 공연장에서 노래로 어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물론 1998년 8집부터 앨범을 열심히 만들고도 홍보에 열을 올리지 않았고 2000년 12살 연하의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수중발레) 국가대표 출신인 이주영 씨와 결혼한 뒤 한동안은 미국을 오가며 활동이 느슨해진 적도 있다.

다행히 SNS(사회관계망서비스) 이전 바람이 불었던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통해 멀어졌던 팬들과 다시 끈이 이어지면서 8년가량의 나태함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지금도 주축 팬이 3천명인 다음카페 '진섭세상' 팬들과는 매년 여름 캠프를 이어가고 있다.

당시 '슬럼프였느냐'고 묻자 그는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보였다.

"슬럼프는 아니고 나태했던 것이죠. 전 반응이 예전 같지 않아도 여유롭게 생각했어요. 히트를 못 해서 힘이 빠진다면 수련을 덜 해서 그런 것이죠. 히트는 인위적으로 되는 것이 아니니 목적이 되면 안 돼요. 신곡을 내고 공연장에서 팬들에게 들려주는 것이 활동이고, 또 제 디스코그래피에도 추가되는 것이죠. 히트는 운이 따라야 하니 잘 안돼도 그다음 작업을 꾸준히 하면 돼요."

그는 현재 연내 선보일 30주년 앨범을 작업하고 있다.

신곡 30%, 리메이크곡 30%, 후배들과의 컬래버레이션 곡 30%를 담을 예정으로 신곡 중 한두 곡은 일반 대중의 공모를 받을 예정이다. 31일까지 음악 거래 플랫폼인 셀바이뮤직(sellbuymusic.com)에서 30주년 발매곡 공모전을 진행한다.

그는 "과거에도 제가 앨범을 낼 때면 데모곡이 담긴 테이프와 악보가 소포로 왔다. 여기서 모티브가 돼 참여형 앨범을 구상했다"며 "내심 기대 중인데 나와 동떨어진 트로트와 하드록만 아니라면 장르 구분 없이 참여해줬으면 좋겠다. 30년을 기념할 넘버가 될 좋은 곡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30년을 보낸 소회를 묻자 그는 숫자가 주는 감회는 없지만 "운명, 팔자라고 생각한다"고 웃었다.

"이름이 알려지며 불편함과 스트레스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그런데도 택할 만큼 노래하는 것이 좋았어요. 아티스트, 뮤지션, 연예인, 속칭 '딴따라'라는 이 직업은 결국 '끼'가 없으면 버틸 수 없는 것 같아요. 부나방이 죽는 것을 알면서도 불에 달려들듯이 불편하고 외로워도 이 길이 좋아서 하는 겁니다. 공연장에서 맛본 희열은 다른 유혹을 떨칠 만큼 매력적이니까요."

타고난 성대여서 앞으로도 서두르지 않고 30년을 더 노래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백두산에 올라가서 노래하고 싶다는 그런 허황한 바람은 없다"며 "공연을 열고 신곡을 내는 것이 뻔한 가수로서의 행보지만 이것을 유지하는 것이 내 인생 최상의 행복이다. 앞으로 30년도 훅 지나갈 것 같은데 그때면 내가 80살이 넘는다. 그땐 가수로 활동하기에 제약이 있는 나이니 그때까지는 열심히 노래할 것이다. '아등바등'은 떨쳐버린 지 오래"라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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