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무리해서 달리지 않는 것이 달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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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로] 무리해서 달리지 않는 것이 달리기다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7년 07월 05일 19시 42분
  • 지면게재일 2017년 07월 06일 목요일
  •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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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6시면 어김없이 일어난다. 비가 내린다. 여명의 빗물은 달디 달다. 비가 올 때는 여운이 더 깊은 법이다. 적당한 습기는 생각의 침전을 통해 부풀려진 상황을 최적화시킨다. 어둠속에서 달린다는 건 약간의 두려움을 동반하기도 한다. 일단 짐승보다 사람이 무섭다. 성큼 지나치는 사람의 그림자는, 짐승의 그림자를 닮았다. 그래도 달린다. 달리는 일은 이제 가장 익숙해져버린 감정이 돼버렸다. 최소한 뛰는 동안만큼은 편하다. 상황에서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적극적으로 몰입하기 위해서다. 고통을 생각하면, 생각하는 그 자체가 고통이다. 어떨 땐 새벽 4시에 산길을 뛰기도 했다. 어디서 담력이 생겼는지 모르지만, ‘전설의 고향’에 나올법한 어둠속으로 내달렸다. 대부분의 러너는 습관으로 뛴다. 습관이 몸에 배면 생각도 따라서 바뀐다.

▶무리해서 달리지 않는 것이 달리기다. 달리기는 고통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고통스럽게 고통을 앓는 것. 그리고 알아가는 것. 인생 밑바닥에 깔려있는 고통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씹는 것. 고통은 동시에 자기 치유를 관통한다. 어둠을 끄집어낸다. 답이 없어 보이는 것이 답인 것처럼, 스스로를 소외시킴으로써 소외의 고통을 잊는다. 모든 것을 해결한 다음에 걸음을 걷겠다는 것이 아니라 다 해결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일단 걸어보겠다는 집념이다. 첫걸음을 통해 지나온 발자취를 묵상한다. 과거는 뒤에 남겨진 흔적이기에.

▶초심자라면 파틀렉(fartlek:속도와 노면의 거리를 달리해가면서 하는 훈련방법)을 권한다. 달리는 중간에 1000m는 2분, 800m는 90초, 400m는 60초간 휴식하며 가볍게 조깅하는 것이다. 달리는 일은 적어도 침묵의 시간을 부여한다. 걸을 땐 누군가와 말하고 풍경을 감상할 수 있지만, 엔간한 사람들이라면 뛰는 동안 완상(玩賞)이나 수다의 여유를 부릴 짬이 없다. 온정신이 맥박에 쏠린다. 마음이 진공상태가 되는 것이다. 달리기 땐 생각이 걷는다. 반대로 걸을 땐 생각이 달린다. 좀 더 샤프하고 민첩하게 정리정돈이 된다. 걸음으로써 생각을 정리하고 달림으로써 생각을 첨삭한다. 하루 중 이때만큼 정리정돈이 잘되는 시간도 드물다. 뻐근한 경련, 회복을 반복하며 강해진다. 집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집으로 되돌아가는 여정을 따르듯이, 달리기는 즐거운 윤회(輪廻)다.

▶인생은 레이스다. 뛰기 싫어도 뛰어야한다. 중간에 멈추기도 애매하다. 멈추면 끝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라는 것도 없다. 제자리서 뛸 수는 있어도 시간은 잡지 못한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 달리기다. 인생의 종착지가, 한 걸음에서 시작되듯 걷고 뛰며 정거장을 채워간다. 가장 절망스러울 때, 가장 절박할 때 멈추지 않음으로써 ‘초심’을 복기하는 것이다. 이건 절망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고 싶은 인생의 터닝포인트일 뿐이다. 셸위런(Shall we run)?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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