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픽]백제 성왕이 일본 천왕이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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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픽]백제 성왕이 일본 천왕이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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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년 03월 30일 09시 05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3월 30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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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무령왕의 맏아들이자 제26대 왕위에 오른 성왕.

성왕은 지금의 충북지역인 관산성 전투에서 패하며 전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일각에선 성왕이 죽지 않고 일본으로 건너가 왕이 됐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관산성 전투는 성급함이 불러온 치욕의 패배로 기록돼 있다.

당시 백제 성왕이 너무 급하게 군사를 출동시키는 바람에 전쟁터로 나가는 부대의 편성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빨리 서둘러라! 신라군이 오기 전에 먼저 관산성을 점령해라!"

관산성은 지금 충북 옥천군 군서면 월전리로, 얼마나 이 전투가 중요했던지 성왕 자신이 선두에 서서 군을 지휘했다. "진흥왕, 내 너를 반듯이 목을 벨 것이다" 그렇게 성왕은 신라 진흥왕의 배신에 피가 거꾸로 솟는 분노를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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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제 성왕을 공격한 신라의 관산성 전투부대가 주둔했던 충북 보은 삼년산성
성왕은 고구려에 빼앗긴 한강, 서해로 통하는 한강 하류를 되찾기 위해 신라 진흥왕과 서기 551년 고구려를 공격했고, 일대를 탈환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신라는 지금의 북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백제는 지금의 서울, 김포, 강화도를 장악할 수 있었다. 중국으로 통하는 항로가 확보된 백제는 한때 고구려 때문에 막혔던 중국과의 교류도 정상화시킬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신라는 3년도 못돼 백제가 장악하고 있던 한강 하류를 점령해 버렸고 이에 격분한 성왕이 즉각 보복 공격에 나선 것이다.

"신라가 한강을 차지하면 백제는 중국과도 단절되고 결국 고립돼 죽는다. 장차 그들은 중국과 결탁하여 우리를 공격할 것이다."

배반에 대한 분노와 응징 그러나 응징을 행동으로 옮기려면 냉철한 분석과 차분한 준비가 필요했다. 하지만 성질이 급했던 성왕은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즉각 행동부터 시작했다. 공주(웅진)에서 부여(사비성)로 도읍을 옮길 때도 성왕은 급한 성격을 그대로 드러냈었다. 공주는 서해에 이르는 수로(금강)가 협착하고 산에 갇혀 큰 나라를 건설할 수 없으니 부여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백제를 세운 것이 만주 벌판의 강대국이었던 '부여'의 지류가 남으로 내려와 세운 나라인 만큼 국호도 '백제'에서 '남부여'로 바꿔야 한다고 하여 그대로 했다.

어떻게 보면 그는 백제왕국을 그 옛날 만주 일대를 호령하던 '부여'로 재건하겠다는 웅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꿈이 신라의 배신으로 암초에 부딪혔으며 그래서 3만의 군사를 이끌고 신라를 향해 진격을 한 것이다. 백제군은 황산벌(논산)을 거쳐 금산군 추부면에 집결했다. 그리고 옥천의 관산성을 정벌하기 위해 식장산과 서대산 사이의 협곡을 동시에 통과하기 시작했다. 지금 금산군 추부면과 옥천을 잇는 도로가 바로 그 길이다.

그런데 뜻밖에 복명이 나타났다. 어떻게 정보를 입수했는지 신라는 북한강 유역의 군주이며 김유신의 아버지 김무력이 이끄는 정예군이 관산성에 매복해 있다가 정신없이 달려 오는 백제군을 기습했다. 지금 보은에 있던 삼년산성의 군사까지 가세하여 백제군은 좁은 협곡에 갇히는 꼴이 되고 말았다. 협곡은 진격하는 통로로서는 좋았으나 반대로 기습을 당했을 때는 대부대가 움직이지 못하는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니 어찌하랴! 아깝게도 우왕좌왕하는 사이 신라군이 쏜 화살에 맞은 성왕은 말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대백제'의 꿈도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성왕 뿐 아니라 좌평(佐平) 4명을 포함, 군사 2만 9600명도 전사했다. 그야말로 전멸을 한 것이다.

그런데 성왕은 정말 전사했을까? 우리 역사는 그렇게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설화는 천황 킨메이가 성왕과 같은 인물이라는 설이 전해오고 있으며 코바야시야스코 교수는 '성왕이 전사하지 않고, 일본으로 와서 왕노릇 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럴 가능성도 있다. 관산성 전투에서 패배한 책임을 면하지 못했을 것이고, 귀족들은 3만의 병력을 잃은 왕의 권위에 도전했을 것이다. 그럴 경우 왕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백제 혈족이 지배하던 일본으로 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변평섭의 충청 역사유람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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