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당] 몰입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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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당] 몰입에 대해
  • 충청투데이
  • 승인 2019년 05월 19일 15시 53분
  • 지면게재일 2019년 05월 20일 월요일
  •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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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승혜 대전시립미술관장

21세기의 화두는 몰입이다. 몰입은 무언가에 빠져 있는 심리적 상태다. 집중은 의도와 노력에 의한 것이라면, 몰입은 감정으로 대상과 하나가 돼 자아와 타아의 경계가 없어지는 무아지경(無我之境)이다.

몰입은 빠져든다는 의미에서 ‘흐르다’라는 의미의 ‘flow’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물에 푹 담겨진다는 의미에서 ‘immerse’라는 단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지난 수 년 동안 융합이 키워드였다면 지금은 몰입이다.

20세기는 분절과 융합의 시대다. 근대적 학문이 나눠지고 다시 융합될 때 새로운 국면이 전개된다는 사고의 틀이다. 하지만 분야별로 분절화된 사람들이 좀처럼 융합되기가 쉽지 않다. 다양한 분야를 통섭하는 르네상스형 사람은 천재이지만, 대다수를 이루는 사람들은 이미 분절화된 분야에서 익숙한 동질성에 안도감으로 느낀다. 또 융합을 견디어 낼 만큼 시간의 여유와 인내를 가지기에는 당장의 성과가 요구됐다.

21세기는 몰입의 시대다. 몰입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가지고 온 현상이다. 몰입은 개인적인 경험이라는 점에서 21세기형 新개인주의와 상통한다. 각자가 컴퓨터 앞에서 인터넷으로 다양한 세계에 몰입됐다면, 지금은 전세계가 자신의 스마트폰에 몰입하고 있다.

외교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문화외교를 위해 유럽, 미주,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전세계를 직접 다녀볼 기회를 가졌다. 어디를 가도 전세계 사람들이 손바닥 크기의 작은 기계인 스마트폰에 몰입하는 동일한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분명 저 작은 스마트폰이 사람의 뇌에 어떤 부분과 작동을 몰입하도록 자극하고 있다.

20세기 예술은 ‘거리두기’로 나와 사물 사이의 거리를 두고 현상을 인지하는 사조가 풍미했다. 나아가 거리를 둘 뿐만 아니라, 익숙한 사물을 의도적으로 ‘낯설게 하기’로 미처 인지하지 못한 새로운 면을 느끼도록 유도했다.

예술가는 작품이 세상을 거리를 두고 낯설게 보도록 하는 인지의 장치로서 설정했다. 감상자는 재미를 느끼기 보다 ‘이것이 뭐지’라는 의문이 들면 성공한 예술로 평가했다.

21세기 예술은 몰입이 전면에 대두된다. 몰입은 재미가 가장 중요하다. 몰입되는 순간 뇌가 일순간 외부의 다른 요소와 자극을 차단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재미를 느끼게 한다.

이제는 거리두기와 낯설게 하기에서 몰입으로 전환되는 시기다.

21세기 예술은 다각적인 몰입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몰입형 체험(Immersive experience)으로 공간전체를 몰입의 장으로 만드는 예술체험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몰입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유미적 경험이 된다. 몰입은 오감을 시각이 70%이상의 감각의 영향력이 있다고 한다. 시각에 청각을 더해 몰입감을 주면, 사람들은 새로운 경지의 미적체험을 하게 된다. 미적 몰입형을 누가 먼저 주도하는가가 다가오는 예술계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몰입형 경험은 이미 경쟁이 시작됐다. 일본에서는 엡슨사가 Team Lab을 인수해 수백명의 엔지니어와 예술가가 협업해 만들어낸 ‘경계없음’ 특별전은 도쿄에서 연일 매진을 기록하고 있다. 애니메이션의 판타지 속으로 들어가는 몰입형 체험이다.

프랑스는 클림트, 고호,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미술사의 대가들 작품을 유휴공간을 활용한 몰입형 체험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그 이탈리아의 전문가들이 포진하고 있다. 중국은 북송대의 국보인 청명상하도와 같은 자국의 고전미술로 몰입형 디지털 체험을 개발하고 있다.

이제 한국의 몰입형 예술을 만들 때다. 과학과 예술이 결합하면서 사람의 심리를 섬세하게 분석하고, 시각과 청각을 디지털의 장치들로 장악해 사람들을 몰입하게 하는 예술, 그 과제가 바로 우리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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