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보다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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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보다 어른이 되었다
  • 충청투데이
  • 승인 2020년 09월 10일 17시 00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9월 11일 금요일
  •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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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병… ‘책임’이라는 무게 실감
함께한 시간, 어른 되어가는 계기로
▲ 임지영 명예기자.
▲ 임지영 명예기자.

20살이 되면 성인이라고 부른다. 과연 나이가 사람을 어른으로 만들까?

내가 어른이 되기 시작한 건 엄마가 처음 조현병을 진단받았던 22살 그 날이었다. 보호자가 와야만 집에 보내주겠다는 말에 대학생인 나에게 연락했던 엄마. 엄마의 힘없는 목소리를 듣고도 ‘엄마의 보호자는 아빠 아냐?’ 하면서 그 전화가 귀찮았던 22살의 나. 별생각 없이 도착했던 응급실에서 의사가 하나하나 설명할 때마다 머리는 새하얗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고, 심장은 쿵 하고 내려앉았다.

엄마에게 조현병이 있다고 말하기까지, 내가 스스로 수용할 수 있을 때까지 3년이 걸렸고, 그리고 그 말이 아무렇지 않을 때까지 6년이 걸렸다.

엄마의 병은 엄마에게서 많은 걸 빼앗아갔다. 내가 알던 긍정적이고 어떻게든 일을 해결해 온 슈퍼우먼 우리 엄마는 점차 총기를 잃어갔다. 처음엔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만 들었고, 두려웠다. 처음으로 '책임'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가 이렇게 무겁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는 처음 엄마일 때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아무것도 몰랐는데도 3남매를 책임지며 우리를 키우셨다는 생각에 눈물을 삼켰다. 그제야 내가 어른으로 자라는 동안 엄마와 함께 성장했음을 느꼈다.

엄마도 엄마가 되기 전에는 나처럼 어른은 어떻게 되는지 고민했던 한 사람이었겠지. 힘들고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엄마와의 시간, 그리고 내 삶에서 후회하지는 말자는 생각에 엄마처럼 나도 책임지는 어른이 되어갔다.

처음엔 소통할 줄 몰라서 엄마가 아픈 게 싫기만 해서 모든 일이 엉성했다. 그때마다 엄마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다시 나는 나를 돌아봤다. 많은 걸 잃어가는 와중에도 엄마는 엄마로 살려고 하셨기에, 그 모습 덕에 나는 어른이 되어갔다.

엄마가 만들어준 나의 어린 시절처럼 엄마의 시간을 만들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생일을 챙기지 않던 가족문화를 바꾸고, 엄마가 당황할만한 일을 만들어도 오히려 내가 덤덤하게 반응해서 문제를 해결했다. 엄마에게 엄마의 생각을, 마음을 물어보며 엄마를 알아갔고 지금도 알아가는 중이다. 이제야 나는 엄마보다 어른이 되었다.

임지영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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