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진흥법, 임대아파트의 건축물 미술작품 제외 역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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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진흥법, 임대아파트의 건축물 미술작품 제외 역차별
  • 충청투데이
  • 승인 2020년 12월 28일 17시 55분
  • 지면게재일 2020년 12월 29일 화요일
  •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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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걸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충남대 조소과 교수

 

'휴거'.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신조어다. 수많은 언어들이 만들어지고 허물어지며 시대의 속살을 보여주기 마련이지만, '휴거'라는 말은 양극화와 불평등의 현상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 보여준다. 임대아파트 브랜드 휴면시아와 거지의 줄임말. 언어는 사회의 인품이며 체온이다. 우리 시대가 얼마나 냉정한지 들여다보게 하는 말이다. 경제논리로 서로를 철저하게 구분하고 차별하는 비극의 언어가 아닐 수 없다.

한 경제학자는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는 소득분배의 균형이 깨지고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나라가 되었다고 밝혔다. 성장의 과실이 대체로 고루 분배되었던 과거보다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실정이다. 불평등의 악화는 우리 삶 곳곳에서 어두운 실체를 드러내 마침내 어린 아이들의 사고까지 지배하고 있는 듯한 두려움마저 든다.

이러한 때에 임대아파트에 법적 미술 작품을 제외한다는 정책은 절망적인 소식이다. 소수가 누리던 예술작품들을 시민에게 되돌려주기 시작한 공공미술은 이제 서서히 외적으로 질적으로 나아지고 있는 시점이다. 그것은 마땅한 시민의 보편적 권리이기도 하다. 문화는 고루 향유되는 것이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과 정책이 시민의 문화적 수준을 오히려 제한하고 후퇴시키는 것이 아닌가 고민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차별의 요소까지 안고 있는 법안이기도 하다.

유럽에는 그 도시의 심장을 미술관이라고 당당하게 자부심을 갖는 도시들이 많다. 앞으로 문화예술이 가야할 궁극의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오고 가며 무심코 바라볼 수 있는 아파트 조형물에서 공공미술을 향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작품 설치에 있어서 임대 아파트와 분양 아파트의 구분은 독소 조항임에 분명하다. 개인의 불평등을 넘어 사회의 불평등을 극명하게 드러낼 뿐이다. 문화예술은 그저 사람에게 위로와 기쁨을 줄 뿐 그 무엇으로도 구분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젊은 작가들이 국내보다 오히려 세계시장에서 서서히 인정받고 있다. 그들의 작품이 구분없이 사람이 사는 곳, 앞마당 같은 아파트 정원에 작품을 세우고 질적 성장을 해나갈 수 있는 마중물이 되기를 바란다. 물론, 작가들 스스로 시민들에게 외면 받지 않도록 자기성찰과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많은 작가들의 깊은 지성과 세련된 인문학적 고민이 문화 변혁의 중심에 있는 사회가 되기를 또한 바라본다.

문제의 막다른 골목에선 늘 정의의 문제에 부딪친다고 한다. 지금 시대는 불균형으로 몸살을 앓는 중이다. 소득이건 문화예술이건 성장하고 그 과실을 고루 나누며 사람을 키우는 시대적 요구가 절실하다. 임대아파트를 문화의 변방으로 만들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임대 아파트는 다른 아파트의 하위 개념이 아니다. 어느 곳에 살건 모든 아이들이 한 나무에서 같은 열매를 따고 한 그늘에서 쉬는 평등한 풍경을 꿈꾼다. 국가와 시민과 작가들이 해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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