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광장] 백송을 옮겨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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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 백송을 옮겨 심고…
  • 충청투데이
  • 승인 2021년 01월 12일 19시 30분
  • 지면게재일 2021년 01월 13일 수요일
  •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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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우 배재대 문화대학장

개인적으로 소띠기도 하지만 호시우보(虎視牛步)라 해서 보는 것은 호랑이처럼 예리하고 무섭게 보되 행동은 소처럼 신중하고 싶다.

행동에는 소처럼 늘 신중함이 깃들여야 하는데 얼마 전에 내가 옮겨 심은 백송이 염려된다. 신년 초부터 내린 폭설에다 매서운 추위 탓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다.

그러니까 내게 인연이 되어 벌곡 작업실 근처에 심었던 백송이니 벌써 이십년 전 일이다.

백송은 10년에 50cm밖에 자라지 않을 정도로 생장이 느리고 잔뿌리가 없어 옮겨심기 어려운 나무이다. 흔히 볼 수 없는 희귀한 소나무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귀하게 여겨졌고 관심과 보살핌을 받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내가 심었어도 관리를 하지 못하고 간간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내가 다시 옮겨 심지 않으면 베일 위기가 생겼다.

그런 백송을 내가 다시 옮기지 않으면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 했다.

사람은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결정을 하는 법인지라 옮기는 비용을 생각하면 귀찮아질 수 있을 것이다. 나무의 중요함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서둘러 포크 레인을 대동해서 백송을 내 작업실 가까이 마당에 옮겨 심었다. 조심해서 옮겨 심는다고 옮겼는데 모르겠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이 추위에 옮겨서 한편으로는 몸살을 앓고 죽는 건 아닐까 싶고 별생각이 다 든다. 내가 나무에 대한 애착이 없으면 무관심하게 나몰라하고 베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갑자기 내가 백송을 옮겨 심으려고 했을까. 무슨 바람인지 시간이 나서 머리도 식힐 겸 나섰는데 그곳이 바로 예산 추사 고택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고택을 찾아 백송을 보았다. 보면서 내게 인연이 되어 심었던 백송을 방치했구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백송에 대한 기억은 내게 또 있다. 아주 오래전에 서울에 갔다가 헌법재판소에 있던 백송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600년이 넘은 그 백송은 고고한 자태가 수렴했고 역사의 산 증인이구나 싶어서인지 다르게 보였다. 그때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자칫 베어질 위기에 있던 백송을 옮겨 심고 나니 마음은 다행인데 죽지 않고 잘 살아야 할 텐데 걱정이 된다. 수시로 찾아가서 백송을 살펴야겠다. 급하게 옮겨 심게 되어 미안하지만 잘 자라서 추사고택에 있는 백송처럼 나의 삶과 노년의 삶을 지켜봐 주었으면 좋겠다. 추사고택은 화려하지 않지만 삶을 되돌아볼 수 있게 했다. 추사고택에 있는 백송이 내게 그런다. “인간의 삶은 영원하지 않아요. 아직 모르세요. 많은 주인을 만났죠. 그들이 태어나고 자라고 늙어가는 일생을 다 지켜봐요. 그 어느 누구도 영원하지 않더군요. 그러니 욕심부리지 말아요. 봄꽃처럼 잠깐 화려하게 피었다 계절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잖아요.”

몇 백 년이나 같은 자리를 지켰을까. 고색창연한 고택의 툇마루에 앉으니 낡고 닳은 서까래가 말을 걸어온다. 사람은 때가 되면 쓰러진다고. 생명 없는 물건도 오래되면 신비스런 존재, ‘영물’이 된다더니 그들보다 짧은 인간의 삶에 순간 숙연해진다. 그리고 떠오르는 물음표. 나는 무엇을 얻기 위해 이제껏 숨 가쁘게 달려왔을까.

고택은 툇마루에 앉았던 많은 주인의 삶을 그려보게 한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다른 이의 전생을 여행하는 기분이다. 사실 고택 여행은 ‘고리타분하다’는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역동적인 레포츠도 없고 누군가에 자랑할 만큼 눈이 호강하는 아름다운 풍광도 찾기 어렵다. 오로지 사색과 성찰만이 있을 뿐. 그래서 찾는 이가 드물다.

하지만 덕분에 나만의 호젓한 공간을 누릴 수 있으니 쉬지 않고 달려온 내 삶을 반추하는 소중한 시간을 얻고 돌아왔다. 예전엔 그저 지나치듯 자세히 보지 않았는데 나이 들어 좋은 점은 허투루 보는 일이 없다. 예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도 보이고 오랫동안 보고 있으면 너무나 예쁘다.

추사 김정희 고택은 그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기둥마다 독특한 추사체가 새겨져 있다. 예술가로도 손색이 없는 추사의 추사체며 세한도는 한국의 피카소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새롭고 창조적이다. 그러한 정신이 가득한 추사고택에서의 시간은 귀한 시간이었다. 추사고택에서 북쪽으로 600m쯤 올라가면 천연기념물 제106호인 백송이 자리 잡고 있는데, 추사 선생님이 25세 때 청나라 연경에서 돌아올 때 백송의 종자를 붓대 속에 넣어가지고 와서 고조부 김흥경의 묘 입구에 심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25세에 백송을 심을 수 있는 마음자세가 누구에게나 있는 마음인가? 그렇지 않기에 추사 선생님은 기인이고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시안을 가지신 분인 것이다. 진리는 오히려 가까운 곳에 있다고 했던가?

내가 다시금 백송을 바라보고 옮겨 심으면서 마음의 고사를 지낼 수 있었던 것도 추사 선생님의 기운이 내게까지 와 준 덕분이다.

백송의 색이 평소보다 희어지면 길조라고 하는데 추사고택을 다시 찾을 때는 내 작업실로 옮겨 심어진 백송이 굳건하게 자리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다리겠다. 2021년이 그래 주길 바라고 코로나바이러스로 힘든 시기에 그 마음은 더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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