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기고] 선한 영향력, 착한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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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기고] 선한 영향력, 착한 바이러스
  • 충청투데이
  • 승인 2021년 03월 21일 17시 20분
  • 지면게재일 2021년 03월 22일 월요일
  •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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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태 대전 서구청장
장종태 서구청장. 사진=대전 서구 제공
장종태 서구청장. 사진=대전 서구 제공

그 식당은 특별한 손님들에게 돈을 받지 않는다. 심지어 VIP 카드를 발급해준다. 아무 때나 와도 되고 식당이 붐벼도 기다리지 않는 '특혜'를 제공한다. 다만 VIP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가게에 들어올 때 쭈뼛쭈뼛 들어오지 말기, 눈치 보지 말고 금액에 상관없이 먹고 싶은 거 주문하기, 다 먹고 나갈 때 미소 짓기. 화제의 주인공은 서울시 마포구에서 '진짜파스타'를 운영하는 오인태 대표다.

오 대표는 결식아동을 VIP라 부르며 밥값을 받지 않았다. 파스타 집은 SNS 등에서 큰 화제가 되었고, 이 사연을 접한 손님들은 "돈쭐(돈+혼쭐의 합성어)을 내주자"며 식당 앞에 줄을 섰다. 파스타 집에서 시작된 '선한 영향력 가게'는 전국으로 확산했고 7개월 만에 500곳을 돌파했다. 어느덧 1000호점을 훌쩍 넘어섰다. 흉흉한 뉴스와 각박한 이야기가 범람해도 이런 훈훈한 사연을 접하면 선한 영향력, 착한 바이러스의 위력을 새삼 깨닫는다.

대전도 착한 바이러스의 중요한 발원지 중 한 곳이다. 지금까지 50곳 가까운 매장이 선한 영향력 대열에 합류했다. 특히 음식점부터 카페·떡집·정육점·수학교습소·탁구장 등 다양한 업종으로 확산하고 있다. 서구 갈마1동 홈세이브 마트에서 정육 코너를 운영하는 유병학 대표도 최근 착한 영향력 가게에 동참했다. 아이들이 급식카드를 보여주면 원하는 고기 부위를 무료로 나눠준다. 소고기든 돼지고기든 종류와 양의 제한이 없다고 한다.

며칠 전 이곳을 찾았다. 착한 바이러스 확산에 앞장서는 유 대표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격려하고 싶어서였다. 유 대표의 바람도 하나다. 아이들이 눈치 보지 말고, 망설이지 말고, 마음껏 가게를 이용해주는 것. 정육점을 찾는 아이들이 조금씩 늘고 있는 것은 반갑지만 머뭇거리는 아이들을 보면 여전히 속상하단다. 그래서 가게 앞에 이런 안내문도 붙였다. "밥 한번 편하게 먹자! 얘들아, 그냥 삼촌 이모가 밥 한 끼 챙겨준단 생각으로 가볍게 와서 고기 받아가자."

배고프고 추웠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고등공민학교를 다니던 무렵, 조금이나마 살림에 보탬이 되자는 생각으로 새벽에는 신문 배달을, 밤에는 대전역 부근을 돌아다니며 껌이나 깨엿을 팔았다. 험한 일을 겪고 상처받을 때도 많았지만, 따뜻한 마음을 베풀어주는 어른들도 적지 않았다. 내가 크면 누군가에게 꼭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되었다. 선한 영향력의 힘이다.

코로나19로 모두가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도 우리가 지치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은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강력한 선한 바이러스가 우리 사회를 감염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선한 바이러스는 항체도, 면역력도 생기지 않는다. 잊을만하면 발생하고, 감염되었다가 나아도 또 걸린다. 최근 감동적인 사연이 SNS를 뜨겁게 달구고, 지금까지도 릴레이 감동이 이어지고 있는 한 치킨집의 이야기가 그 증거다.

다음 달부터 2분기 코로나19 예방접종이 시작된다. 노인시설과 75세 이상 어르신을 시작으로 일반인도 정해진 순서에 따라 예방접종을 하게 된다. 머지않아 집단면역이 형성되겠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을 막은 가장 큰 힘은 우리 사회의 선한 바이러스였다고 믿는다. 마스크를 양보하고, 의료진에게 빵과 감사 편지를 보내고, 가게 매출이 줄자 월세를 깎아준 이웃도 선한 바이러스 유포자들이다.

"매일 와도 괜찮으니, 부담 갖지 말고 웃으며 자주 보자." 선한 영향력 가게 주인들이 결식아동들에게 제시한 VIP의 마지막 조건이다. 참 선한 이웃들이다. 그들이 VIP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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