곯아도 젖국이 좋고 늙어도 영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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곯아도 젖국이 좋고 늙어도 영감이 좋다?
  • 충청투데이
  • 승인 2014년 11월 11일 19시 46분
  • 지면게재일 2014년 11월 12일 수요일
  •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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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 유제봉 국제로타리 3680지구 2005-06총재
모 경로당에 부탁을 받고 특강을 할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도 여느 경로당이나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회원들의 분포도가 예외 없이 70대 후반에서 80대 이상의 어르신들로 거의 이루어져 있다. 물론 국가에서 정한 노인의 자격요건이 65세부터라지만 경로당 구성원 현실은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인 소위 젊은 층 노인들은 명함조차도 못 내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른바 젊은 층 노인들은 바쁜 가사(家事)에다, 돈벌이나 취미생활에 발목이 잡혀있어서 경로당을 기피하고 있는 것 같고,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자신들이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인들 속에 휩쓸리게 되면 더 쉽게 늙어버린다는 속설도 한 몫 한 듯싶다. 결국 연령대 격차가 심해 적응력에서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주종을 이루는 듯하다. 그래서 경로당은 80대 이상의 어르신들 전용공간이나 다름이 없을 정도다.

이렇게 대부분의 경로당엔 고령화시대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으로 여성의 생존율이 남성보다 더 길기 때문에 거의 혼자되신 할머니들이 대부분이여서 무려 80~90%를 차지한다. 그래서 "할아버지 회원들은 가뭄에 콩 나듯 한다"라고 경로당 관계자가 귀띔해준다. 어르신들의 주된 대화내용을 살펴보면, 과거 젊었을 때에 화려했던 시절이나 영감님하고 살았을 때의 행복했던 이야기들로 주종을 이룬다. 그 다음이 자식자랑이다. 자식 잘못된 집안은 거의 없다. 혹시 잘못됨이 있다 해도 감추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한 세상 삶을 살아오는 과정에서 인생 말년에 처한 입장치고는 모두가 파란만장한 삶들인 것이다.

그래서 이분들에게 지금의 나이에 자손들이 있는 댁에서 편안히 계시지 왜 경로당에 나오시느냐고 역질문을 던지면, "며느리 눈치나 보며 사느니 차라리 여기가 자유스럽고 천국처럼 느껴진다"라며 손사래를 치신다. 완곡한 고부간의 갈등이 그대로 배어나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 중에 그래도 영감하고 함께 살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하신다. 그래서 ‘곯아도 젖국이 좋고, 늙어도 영감이 좋다’라는 멋지고 풍자 섞인 말씀을 서슴지 않아 배꼽을 잡는다. 더 후회스런 일은 생전에 아기자기하게 살지 못하고 티격태격하며 싸움질이나 하며 보낸 세월이 너무나 아깝고 후회스럽다고 한다.

인간은 태어나면 생로병사의 어김없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젊었을 때 아무리 똑똑하고 잘났어도 나이 앞에서는 당할 장사가 없다. 그래서 노인들은 툭하면 죽고 싶다고들 하신다. 왜 그럴까. 이제 살만큼 살아서일까. 아니면 누릴 것을 다 누렸기 때문일까. 그러나 그것은 천만의 말씀이다. 어르신들의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가 애교스런 거짓말이다. 감기만 들어도 호들갑을 떨며 병원으로 직행하시는 것만 보아도 삶에 대한 애착심이 어느 정도인가를 가늠할 수가 있어서다. 노인들에게 유익하다고 생각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어느덧 시간이 거의 다 된다. 특강 말미에 노년을 즐기는 셰익스피어의 아홉 가지 생각을 소개드리면서 강의를 마쳤다.

첫째, 학생으로 계속 남아 있어라. 둘째, 과거를 자랑 마라. 셋째, 젊은 사람과 경쟁하지 마라. 넷째, 부탁 받지 않은 충고는 굳이 하려고 마라. 다섯째, 삶을 철학으로 대체하지마라. 여섯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즐겨라. 일곱째, 늙어가는 것을 불평하지 마라. 여덟째, 젊은 사람들에게 세상을 다 넘겨주지 마라. 아홉째, 죽음에 대해 자주 말하지 마라. 죽음보다 더 확실한 것은 없다. 죽음에 관한한 인류의 역사상 어떤 예외도 없었다. 확실히 오는 것을 일부러 맞으러 갈 필요는 없다. 그때까지는 삶을 탐닉하라. 우리는 살기 위해 여기에 왔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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