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學生)과 유인(孺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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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學生)과 유인(孺人)
  • 충청투데이
  • 승인 2015년 10월 13일 18시 42분
  • 지면게재일 2015년 10월 14일 수요일
  •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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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속 사연]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차례나 제사 지낼 때 먼저 하는 일이 무엇일까.? 목욕재계(沐浴齋戒)도 선행할 일이지만 지방(紙榜:한지에 써서 모신 신위) 쓰기가 아닐까. 지방의 경우 유독 머리에 항상 남아있는 단어가 있다. 바로 '학생(學生)과 유인(孺人)'이다. 다시 말해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 또는 '현비유인순천박씨(顯?孺人順天朴氏)' 전자는 남편, 후자는 부인에 해당한다.

먼저 '학생'이란 어떤 의미일까. 요즘 학교 다니는 사람은 당연히 아니다. 원래 학생은 고려시대에 국자학(國子學)이나 향약(鄕約), 사학(私學) 등에 다녔거나 다닌 사람들 가운데 벼슬을 하지 못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이 같은 사람이 죽으면 제사 때 지방을 써야하는데 벼슬이 없기 때문에 지방 쓰기가 참으로 곤란했다. 지방에는 반드시 벼슬 명(名)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여하튼 고민이었다. 누군가에 의해 묘안이 떠올랐다. 비록 공부를 하지 않았거나 벼슬을 못했어도 사자(死者) 예우 차원에서 '학생'이란 벼슬 아닌 벼슬을 지방에 적어 넣기로 했던 것이다.

반면 부인 지방에 부여된 '유인'이란 무엇일까. '유인'은 문무관(文武官) 정 9품과 종 9품의 본처에게 주는 벼슬이다. 고려시대 18품계 가운데 제 18등급에 해당하는 최하위 품계다. 남편이 정 9품이나 종 9품의 벼슬을 하지 못했는데도 부인의 지방(紙榜)에는 '유인'이란 벼슬을 적는다. 이유는 뭘까. 이 역시 죽은 사람을 대우하기 위해서다. 여자는 죽어서야 비로써 대접을 받았다.

살아생전 벼슬을 하지 못했거나 공부를 하지 못한 것도 억울한데 죽어서도 제대로 지방을 쓰지 못한다면 얼마나 속상하고 후손들에게 부끄럽겠는가. 그러니까 글자 하나 모르는 무식쟁이였던, 노비였던, 공부를 했으나 벼슬을 하지 못했던, 여자였던 모두 사후 최소한의 벼슬을 받았거나 공부를 한 것처럼 신분을 높여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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