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충서(忠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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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와 충서(忠恕)
  • 충청투데이
  • 승인 2015년 11월 03일 19시 44분
  • 지면게재일 2015년 11월 04일 수요일
  •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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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 이근규 제천시장
오늘, 제법 잘 되는 휴대폰을 전자펜과 노트기능이 있는 휴대폰으로 바꿨다. 이 일에는 작은 사연이 있다.

최근 내게 가까운 이들이 조심스레 충고를 해왔다. 사람들과 만날 때나 행사장에 앉아서 ‘시장이 휴대폰이나 만지며 딴 짓을 한다’며 섭섭해 하니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이건 너무 억울한 오해다. 내게는 메모하는 오래된 습관이 있다. 사람들과 만날 때면 아예 수첩을 꺼내들고 주요 내용을 기록하며 대화를 하곤 했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하면, 길을 가다가도 멈춰 서서 수첩을 꺼내들었다. 이런 수첩만 해도 수 십 권에 달하고 있을 정도다.

어떤 이는 그렇게 메모하는 모습이 진지하고 친근해 보여 좋다고도 했다. 그러던 것이 스마트폰이 일상화되면서 휴대폰에 타이핑으로 메모하는 것으로 발전했다. 타이핑한 주요 내용은 메모 어플로 동시에 이메일로 저장되고, 나는 언제나 웹상에서 수정, 편집하는 등 기록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사이버 공간에 영구적으로 보관할 수 있으며, 날짜별로 구분하고 검색까지 가능하니 더 이상 좋을 수 없었다. 더구나 학창시절에 타자자격시험을 볼 정도로 타이핑에 익숙한 필자로서는 매우 편리하고 유용한 기능이었다.

이렇듯 메모기능을 잘 쓰고 있는 나를 두고, ‘휴대폰이나 만진다’고 한다는 것이다. 아마 휴대폰으로 카톡을 하거나, 문자채팅을 하는 것쯤으로 여겼을까? 설마 게임을 하는 것으로야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심각한 오해였다. 필자에게 말을 해오는 가까운 이들에게 이런 사정을 말하면, ‘아하 그랬어? 스마트폰을 정말 잘 활용하는 구나!’라며 감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속으로 섭섭해 할 뿐이지 입 밖으로 말하지 않는다. 더구나 직접 대놓고 지적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일이 있어 휴대폰점을 찾게 되었다. 이제 노트기능이 있는 스마트폰에 전자펜으로 기록하면, 이는 누가 봐도 메모하는 모습이니 더 이상 ‘휴대폰이나...’하는 오해는 없을 것이다.

이런 식의 황당한 오해는 더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아들들은 몇 시간씩 컴퓨터 앞에 앉아, 이어폰을 끼고 인강(인터텟 강의)을 듣곤 했었다. 이를 보는 할머니께서는 몇 년을 두고 속앓이를 하며 끌탕하셨다. 손주 놈들이 공부는 안하고 영화나 본다거나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고 여기셨다. 열불이 나고 속이 타셨지만, 그나마 할머니의 지극한 사랑이 있어 분란을 일으키지 않았지, 어쩌면 온 집안이 난리가 났었을 것이다. 나중에 그게 요즈음 식의 공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 할머니께서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며 지난 일을 이야기하셨다. 이렇게라도 오해가 풀려 다행이었다.

골목을 걷다가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려 얼러주고 하다가 뒤늦게 이를 본 아이 엄마로부터 ‘왜 남의 아이를 울려요?’하는 구박을 당한 적도 있다. 기차역 계단을 비틀거리며 오르는 어느 할머니의 짐을 들어 드리고 나오다가 마중 나온 할머니 아들에게서 받았던 의혹이 담긴 눈초리도 생각난다.

그랬다. 대학시절 데모대와 함께 잡혀가 유치장에 갇혔다가 약속장소에 나가지 못해 떠나보낸 이도 있었다.

우리들은 서로 다른 가치관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타인들이다. 그러다 보니 걸핏하면 오해할 일투성이다. 그렇게 오해와 오해가 쌓이면 불신과 갈등까지 생기게 되니, 참으로 억울한 일이 하나 둘이 아닐 것이다. 서로 아끼던 사이가 오해로 억울하다며 울먹거릴 때, 사람들이 황당한 이야기를 해올 때,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납득하지 못하는 이를 만날 때, 진심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는 쓸쓸하고 가슴이 아프게 된다. 이러한 오해를 줄일 수 있는 길은 있다. 서로가 충실하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마음을 열고 다가서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이 배려(配慮)요, 공자가 말하는 충서(忠恕)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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