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시인들] 봄잔치

문인수 기자

2020-03-09     문인수 기자

꼭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그 느낌이다. 계절의 '맏이'가 태동했다. 전염병이 난리고 미세먼지 날리고 황사가 날려도 봄꽃은 흩날린다. 축포를 일찍 터트리지 마라. 소멸하는 것들의 시샘으로 해를 받을까 염려다. 무작정 겨울옷을 벗었다고 봄은 오지 않는다. 봄이 오면 겨울옷은 자동으로 벗겨진다. 양력 삼월의 봄바람을 맨살로 닿기에는 아직 차다. 햇살은 부각된다. 겉옷을 뚫고 전신까지 따스한 기운이 퍼진다. 겨우내 경직된 몸마디가 풀어진다. 시리고 음산한 겨울을 극복한 무상보약이다. 온몸으로 봄을 영접하라.

봄꽃이 아름답다 한들 가을꽃만 할까마는 춘삼월 땅을 헤집고 올라온 연둣빛 이파리는 화려한 단풍보다 흥미롭다. 새순이 흙을 밀어내고 땅과의 마찰을 극복한 채 초원에 비상했다. 비가 젖을 주고 바람이 손잡아주고 태양이 일으켜줬다. 황량했던 벌판이 초록빛으로 덮이는 장면은 경이롭다. 축하곡으로 모차르트 협주곡 정도는 튀어나와야 하는데 가수 남진의 노래 가사가 먼저 떠오른 사실은 희극인가 비극인가.

마음은 꽃밭이 아닌 풀밭에 가 있다. 풀때기들이 발바닥을 살살 간지럽힌다. 흙을 사뿐히 밟아라. 땅 밑에 개구리, 대가리 깨질라. 어디서 이런 기쁨이 샘솟나. 땅을 갈아엎고 새 인생이다. 어디서 이런 기운이 솟았나. 무명의 잡초가 온실 속 왕들의 정원보다 유명한 건 광야의 바위틈에서도 기어이 싹을 틔우고야 마는 질긴 생명력 때문이다. 봄에 들꽃은 불꽃처럼 번져간다. 불나방이 들꽃을 불빛으로 여겼다. 나비처럼 날아와 벌처럼 쏘고 가는 것들이 천지에 널렸다. 네 말은 꿀처럼 달고 행동은 쑥처럼 쓰다. 손은 무슨 짓을 하든지 얼굴만은 친절한 모습이다. 시퍼런 시뻘건 겉만 화려한 위장 나비 떼야 까불지 마라. 너희는 하루살이만도 못하다. 거를 것을 제대로 거르지 않으면 봄은 지는 해다.

필 때가 있고 질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으며, 달릴 때가 있고 쉴 때가 있다. 흥할 때 실패를 경계하고, 쇠할 때 성공을 기원하라.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다시 찾아온다. 삶이 똑같이 지속되는 우연은 없다. 인생을 바꾸는 시기는 온다. 때를 기다리고 준비하는 곳에 '봄날'은 예고 없이 꽃핀다.

문인수 기자 moonis@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