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시인들] 사쿠라

문인수 기자

2020-03-23     문인수 기자

▶쉽게 만들어진 것은 쉽게 파괴된다. 봄날과는 길어야 2주짜리 계약이다. 이제 더 이상 '출생의 비밀' 따위는 궁금하지 않다. 가끔 딴지 걸리는 원산지 논쟁은 저마다 원조식당이라고 우기는 먹자골목 간판처럼 보기 싫고 듣기 싫은 소리다. 이 근본 없는 논란거리는 언제부터 꽃폈나. 지나친 민족주의는 아름답지 않다. 벚나무는 봄을 즐길 줄 아는 상춘객의 것이다. 우리 땅에 피면 한반도 꽃, 열도에 피면 섬나라 꽃이다. 괜한 시빗거리 만드는 자들이 '사쿠라' 아닌가.
▶'이놈 저놈 그놈이 그놈이여' 우리 정치는 무엇을 보수하고 어디로 진보할 것인가. 외딴섬 '여의도' 사쿠라들은 4년마다 털갈이 중이다. 선거 때마다 기회주의자가 판친다. 제멋대로 여론이니 민심이니 표밭을 계산하며 중도놀음을 벌인다. 국민은 단순하게 박근혜-문재인 모두를 대통령 만들었다는 노회한 정치마케터를 보고 표를 주지 않는다. 이런 행태는 편향되지 않고 묵묵히 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유권자를 욕보이는 짓이다. 선거는 바른생활사나이 경연대회가 아니다. 거짓말하는 착한 소년보다 솔직한 배드보이가 낫다.
▶생물학적 나이가 젊다고 참신할까. 가치 중립적인 언어는 정치를 만나면 쉽게 오염된다. '손발이 마르고 닳도록 열심히 뛰겠습니다' 나라를 이끌어 보겠다는 청년 정치인의 패기와 각오는 취준생 면접자의 두루뭉술한 대답처럼 손발이 오그라든다. 인생길 산전수전 겪어본 베테랑조차 국가를 이끌기 역부족한 판국에 청년팔이 사기극이 정당에서 벌어진다. 여의도 급행열차에 기생하는 청년정치는 누구보다 체제 순응적이고 고리타분하고 딸랑딸랑 라인을 잘 탄다. 금배지를 달기 위해 포장한 흙수저 신화는 금수저 바꿔치기 역사로 탈바꿈 한다. 출세를 위해 철새가 되는 기성정치와 다를 바 없다. 이런 자들은 피기 무섭게 지는 벚꽃처럼 허공에 흩어질 테다.

▶불법은 범죄자의 무기였고, 탈법은 권력의 권리였고, 준법 의무는 국민에게만 적용돼 왔다. '국민의 심판 어쩌고저쩌고' 외친 그 말대로 되돌려 받을 대상은 누굴까. 한국정치는 한류 드라마보다 혀를 차게 만든다. 애처롭기로 따진다면 '미드'를 뛰어넘겠다. 당선 전에는 친절한 머슴이 90도로 허리를 숙인다. 당선 후에는 뒷짐 진 나리께서 진실하게 구라를 치신다. 과거와 달리 현재는 서민의 친구, 정의의 사도로 쇼한다.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 이 노랫말은 시대를 관통하는 진정한 민중가요다. 국민을 감동시키고 국민을 대변한다는 미사여구는 드라마 소재로 유효할 뿐이다. 정말 요지경 세상이다.

문인수 기자 moonis@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