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시인들] 근무태만 국회
[충청투데이 문인수 기자] 그런 식이면 세종대왕이 후보로 나오고 이순신 장군이 후보로 나와도 욕먹는다. 저녁 9시 무렵이면 '존경하는 유권자 여러분'이 집에서 편히 쉴 시간이다. 라이트와 확성기를 요란하게 틀어 재끼며 골목길을 누비는 유세차는 스트레스 유발차다. 점점 멀어지던 소리는 다시 가까워진다. 유세 트럭은 오르막 끝까지 반환점을 찍고 반대편 내리막으로 종주를 벌인다. 설마 후보자가 그렇게 시켰을 리 없다. 함께 일하는 선거운동원과 소통하지 못하면서 유권자와 소통할 수 없다. 사람 부리기 어디 쉽나. 표 얻기는 어디 더 쉽나. 잘되는 집구석은 다 계획이 있다. 안되는 집구석은 이유가 가지가지다.
선거운동은 길거리 행위예술이다. 형형색색 점퍼를 걸친 선거운동원들이 모자와 마스크로 '마스크'를 거의 가리고 사거리 한쪽에 횡으로 도열한다. 하나둘셋 일제히 '폴더 인사'를 올린다. 몇 초간 허리를 접은 채 동시에 펴야 한다. 여기도 '몸치'는 문제다. 눈치 없는 한 분이 허리를 세우고 홀로 쳐든 것을 깨닫고 다시 접는 순간 다른 이들은 펴진다. 완벽한 불협화음이다. 운전석에서 이런 광경을 보고 있자면 스탠딩 코미디가 따로 없다. 또 다른 어떤 곳에서는 선거운동원들이 일사불란하게 '파도타기' 경지까지 보여주며 상대 후보 측 기를 꺾는다. 이런 협업은 추하지도 우아하지도 않고 그냥 우습다. 선거운동이 '명랑운동회'로 격하된 현상은 웃기고 슬픈 정치판 현실과 비례한다.
선거가 단순히 사람 하나 바꾸고 자리 몇 개 세우고 내리고의 일일까. 나라의 흥망성쇠 문제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20대 국회를 짚어본다. 13일짜리 선거운동 알바조차 열과 성을 다하면 행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판국에 4년 계약이 만료되는 20대 의원들은 국민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줬나. 꼬박꼬박 세비를 받아 갈 만큼 국가와 국민에게 충성했나. 민심은 시퍼런 쇼에 감동하지 않는다. 국회의 존재 목적은 대의민주주의다. 민주주의 핵심은 권력의 독점을 막는 '삼권분립'이다. 국회가 행정부 견제는커녕 권력 폭주를 제어하지 못할 바에 금배지를 달아야 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