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 기획] 군함도 생환자 최장섭 옹 “일본만행 폭로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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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기획] 군함도 생환자 최장섭 옹 “일본만행 폭로하고 싶었다”
  • 이인희 기자
  • 승인 2017년 08월 13일 18시 11분
  • 지면게재일 2017년 08월 14일 월요일
  •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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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기획] 군함도 생환자 최장섭 옹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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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만난 최장섭 옹은 일본 나가사키 현의 하시마(군함도)로 강제 징용됐던 그 날의 기억에 연신 눈시울을 붉힌 채 생생한 증언을 털어놓았다. 이인희 기자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나니 오로지 살아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만 들었지. 살아 돌아가 일제의 만행을 반드시 온 세상에 폭로하겠단 마음으로 버텼어.”

72주년 광복절을 이틀 앞둔 13일 만난 최장섭(89) 옹은 일본 나가사키 현의 하시마(군함도)로 강제 징용됐던 그 날의 기억에 연신 눈시울을 붉힌 채 생생한 증언을 털어놓았다.

현재 대전에 거주 중인 최 옹은 1943년 2월 징용을 피해 숨어 살던 형을 대신해 ‘너라도 가야 한다’는 말과 함께 영문도 모른 채 열 여섯 어린나이에 익산군청으로 끌려갔다. 그는 “당시 익산군수가 나를 보며 ‘이렇게 어린애까지 보내야 하느냐’고 징용관에게 묻자 ‘거기(하시마 탄광)는 굴이 좁아 어린 사람이 일하기 유리하다’는 대답이 들렸다”며 “또래 아이들 수십 명이 그렇게 죽을지도 모르는 운명 속에서 기차를 기다리게 됐다”고 회상했다.

최 옹은 자신을 마중나왔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나를 위해 어머니가 찹쌀떡 서 말을 지어 건네주고 연신 기차에 대고 무사히 돌아오라고 절을 하시더라”며 “아버지도 함경 아오지 탄광으로 징용되셨는데 이 운명이 참 기가 막혀 눈물이 났다”고 말끝을 흐렸다. 최 옹은 그렇게 일행과 기차를 타고 대전을 거쳐 마산에 도착한 뒤 배를 타고 나가사키 현으로, 그리고 다시 연락선으로 옮겨 타 군함도에 도착했다.

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 반도 서쪽의 섬으로 1800년대 초 이곳에서 석탄이 발견되면서 탄광산업 혁명지가 됐다. 섬이 군함 모양을 닮았다 해서 군함도라고 불리던 명칭은 일본이 붙인 애칭이다.

최 옹은 “사방이 바다인 그 곳에 끌려온 우리는 중대별로 분류되고, 이름 대신 나는 6105번 이라는 번호를 부여받았다”며 “그 곳은 지옥이자 감옥이었다”고 증언했다.

도착한 첫 날부터 최 옹은 탄광으로 끌려가 강제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속옷만 입고 머리에 조명 하나만을 부착한 채 갱도 깊숙한 곳에서 조개탄을 캐거나, 조개탄을 캔 부분이 무너지지 않도록 틈을 메우는 작업을 매일같이 반복해야만 했다. 당시 군함도에서는 일본 최대 군수기업이었던 미쓰비시가 탄광을 운영했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1939년부터 해방이 되던 해인 1945년까지 조선인 800여명이 끌려가 강제노동에 시달리다 134명이 숨졌다. 사망원인은 압사나 질식사, 변사가 대부분이다.

하루 2교대로 12시간 씩 작업을 강행하면서도 최 옹이 먹을 수 있던 것은 콩찌꺼기로 만든 ‘콩깻묵밥’ 뿐이었다. 살기 위해서는 모래와도 같은 그것을 먹어야 했던 군함도 강제징용자들은 일과를 마치고 누우면 모두 송장처럼 변해버렸다고 최 옹은 전했다. 일부는 뗏목을 만들어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번번히 잡혀 돌아와 조선인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공개매질을 당하기도 했다고 그는 증언했다.

그러던 중 1945년 8월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고, 최 옹은 초토화가 된 시내를 청소하는데 동원되기도 했다. 최 옹은 “빗자루만 달랑 들고 나와보니 나가사키 시내가 온통 쑥대밭이었다”며 “곡물창고가 무너진 틈에서 쏟아져 나온 콩을 (원폭 피해에 노출된 줄 모르고) 배가 고파 무작정 주워먹었는데 얼마 안가 손가락이 짓무르고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다”고 서러움을 토로했다.

그렇게 강제노동과 원폭 피해를 고스란히 입은 최 옹은 그 해 11월이 돼서야 작은 통통배를 타고 고향으로 생환할 수 있었다. 3년여동안 지옥 같은 노동을 견딘 대가는 고작 돈 50원이 전부였다.

최 옹은 “나에겐 아프고 참혹했던 세월이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후손에게 반복되지 않도록 올바른 역사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그럼에도 일본은 만행을 숨기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고 군함도를 관광지로 만드는 파렴치한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역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역사를 도외시한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며 “내 개인의 고통을 기억해 달라는 것이 아닌, 우리 후손들이 왜곡된 역사를 올바로 잡아주는 것을 마지막 소원으로 바래본다”고 말한 뒤 고개를 떨궜다.

이인희 기자 leeih5700@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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