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한 농산물 섭취에 대한 기회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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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농산물 섭취에 대한 기회비용
  • 충청투데이
  • 승인 2018년 05월 10일 18시 02분
  • 지면게재일 2018년 05월 11일 금요일
  •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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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범 충남도 농산물유통과장

5년 전쯤인가. 당진의 시골집에서 아내와 농사일을 하고 있는데 처남이 찾아왔다. 반가운 마음에 아내는 텃밭에서 엇 갈이 배추를 뜯어서 된장국을 끓여 주었다. 맛있게 한 그릇을 허겁지겁 비운 그는 밭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구멍의 숭숭 뚫린 배추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누나! 이걸로 나 국 끓여 준거야!"라며 구역질을 해댄다.

그는 알만한 반도체회사 연구소의 간부로 있는 과학자다. '아주 안전하고 신선한 농산물인데…, 과학자라는 사람이 저렇게 말하나'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무척 섭섭하였다. '그렇다. 안전하고 신선할지언정 깨끗한 것은 아니었구나!'라고 스스로 반성하게 되었다.

내년 1월 1일부터 PLS(Positive List System, 농약허용물질 목록관리제도)제도가 모든 농산물에 적용된다. 농약관리 목록에 잔류농약기준이 있는 농약이면 그 기준이하로 그 외 농약은 0.01ppm 이하이어야 한다. 엇 갈이 배추의 살충제(다이아지논의 경우) 허용기준은 0.1ppm이하이다. 즉 유사 농약이라 하더라도 등록되지 않으면 0.01ppm이하로 10배 강화된 기준이다.

어느 농업인은 이건 'Positive가 아닌 Negative시스템이다'라고 말할 정도다. 물론 농약을 전혀 쓰지 않는 친환경농사를 짓는 이들도 있다. 그러려면 풀을 뽑아야하고, 채소는 벌레가 덤비지 않도록 모기장을 씌워야한다. 그럼에도 병이라도 들면 생산량은 줄어든다. 노동력은 두 세배 더 들고 생산량은 적기 때문에 친환경농산물은 비싸다. 소비자는 깨끗하고 신선하며 안전한 농산물을 선호한다. 이 기호에 맞추려면 농사꾼은 그만큼 더 노동력을 투여해야 한다.

그렇다고 하여 수입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동 천안 농협 로컬 푸드 매장에서 연간 2000만 원 정도 농산물을 판매하는 한 아주머니는 "공장가서 일하는 게 낫지, 새벽부터 밤 늦게 까지, 논 밭 갈고 기르고, 수확하여 포장해서 매장까지 오토바이로 싣고 가 가격표 붙여 진열대에 올려놓고 또 와서 일하고 정말 못할 짓이다. 2000만 원 팔아봐야 남는 건 1000만원이야"라고 하소연한다.

농사일은 노동 중에서도 상노동이다. 농촌의 노인들을 보면 다리가 휘고 등은 굽었으며, 얼굴은 검고 주름살이 깊게 패여 있다. 노동자의 대명사 건설 노동자도 이렇지는 않다. 조선 태조가 '농자는 천하지대본(農者는 天下之大本)이라고 했던가. 그럼에도 농자의 수입은 적고, 사회적 지위도 여전히 낮은 편이다. 농산물 생산자는 가격을 결정할 수 없다. 그러나 팔리는 농산물을 생산하려면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국가가 발전할수록 소비자의 눈높이는 높아져왔다. 농산물을 보는 기준도 그렇다. 농사꾼의 노동이 강요되는 이유이다.

PLS 대응 민관합동 TF회의에서 참석자 대부분이 "PLS는 반드시 해야 한다. 그러나 당장 내년에 실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토로 되었다. 맘씨 좋고 유순한 농업인 단체회장은 "다 좋은데 정부가 가격을 지지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여기서 나는 농업의 공공성이 강조되는 이유를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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