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 情이 넘치는 우리네 삶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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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 情이 넘치는 우리네 삶터지!
  • 최장준 기자
  • 승인 2006년 04월 06일 19시 00분
  • 지면게재일 2006년 04월 07일 금요일
  •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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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장터지기' 김한철 할머니(77세)
5일장이 서는 날.

매일같이 전국 장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반인이라면 장터를 추억으로, 향수를 느끼며 찾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있다.

   
 
   
 
바로 장돌뱅이.

그렇지만 이들도 장터가 삶터인 동시에 옛 향수를 누리고, 사람이 있어 좋다고들 말한다.

유성장이 서는 날에는 무려 800여 명의 장돌뱅이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집에서 직접 기른 채소·가축 등을 가지고 장터을 찾는 장돌뱅이가 있는가 하면 공판장에서 싱싱한 물건을 구매해 장터를 찾는 장사꾼도 있다.

또 대량으로 물건을 취급하는 이들도 있지만 집에서 가꾼 이것저것 조그마한 작물들, 물품이라도 내다 팔아 용돈을 벌기 위한 좌판도 있다.

김한철(77·사진) 할머니는 30여 년 동안 장터를 돌며 잔뼈(?)가 굵은 장돌뱅이. 김 할머니는 집에서 기른 감나무에서 몇 개의 감을 따다 장에 나와 판 것이 계기가 돼 장돌뱅이 삶을 살게 됐다.

김 할머니는 "시집와서 농사를 지었는데 생계를 꾸려 가기가 많이 힘들었다"며 "생각 끝에 무엇이든지 장에 내다 팔아야겠다고 결정했지"라고 말해 주었다.

김 할머니는 장이 서는 날 이른 새벽부터 분주함을 떤다.

새벽 4시에 농산물 공판장에 가야 하기 때문.

김 할머니는 공판장에서 이것저것 내다 팔 물건을 꼼꼼히 살핀 후 최종 결정을 내리고 구입한다.

자동차가 없는 할머니는 이를 운반할 적임자를 찾기 위해 또 다른 시름에 빠져든다.

운임이 많이 들 경우 소득도 적지만 고객들에게 비싸게 판매해야 하기에 마음에 걸리는 것.

이렇게 운반한 물건들을 이른 아침 좌판에 늘어 놓고, 아침 9시가 돼서야 인근 식당에서 숨을 고르며 따뜻한 순대국밥을 뜨고 장사를 시작한다.

다른 장터는 오후 1시면 끝물이지만 유성장은 오후 8~9시에 끝나 집에 돌아가면 밤 11시가 된다.

   
 
   
 
김 할머니는 녹초가 돼 집에 돌아오면 아픈 팔을 주무르며 피곤함에 지쳐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든단다.

김 할머니는 충북 옥천장, 금산장 등을 돌며 30여 년을 장터와 연을 맺고 있다.

처음 장에 나서는 날, 채소를 담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버스를 탔지만 길을 잘 몰라 한참 지난 후 내려 걸어오니 장이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 부끄럼이 많아 제대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해 가져간 물건을 거의 다시 갖고 온 날도 허다했다.

하루 종일 장터를 찾은 사람들과 말씨름을 하다 보면 지쳐 쉬고 싶지만은 자식들 교육 생각에 이를 악물고 물건을 팔았단다.

김 할머니는 "장사를 하다 보면 별별 사람 다 만난다"며 "물건을 구입하고 잠시 후 가지러 오겠다는 사람이 안 오는 경우도 있고, 다짜고짜 욕을 하고, 화를 내기도 하지 뭐"하며 웃음을 짓는다.

"그래도 할 수 있어. 같이 그렇게 하기도 뭐하고, 해서도 안되지"라며 다시 한번 크크거리며 웃어버린다.

김 할머니의 유성 단골들은 10년보다 더 오래됐다고 한다.

단골손님 김모(60)씨는 "할머니는 물건을 판 게 아니라 정을 팔았어"라며 "장사는 남는 게 있어야 하는데 정말 이렇게 팔면 남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한다.

김 할머니는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 하고 싶단다.

김 할머니는 "예전보다 줄었지만 아직도 사람들이 정이 많아서 장터에는 생기가 있고 활기도 넘쳐나지"라며 "난 사람들이 좋아서 이곳을 떠날 수가 없어. 얼마나 좋아. 서로 농담도 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하고"라며 장터 예찬론을 펼쳤다.

할머니를 찾은 손님들은 2000~3000원의 장을 보지만 쇼핑 가방에는 풍성한 채소와 정감이 가득 넘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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