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당] 영화에서 배우는 세계적 연구자의 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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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당] 영화에서 배우는 세계적 연구자의 육성
  • 충청투데이
  • 승인 2020년 03월 01일 15시 58분
  • 지면게재일 2020년 03월 02일 월요일
  •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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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수 ETRI기술상용화센터장

지난달에는 코로나 19의 광풍 속에서도 온 국민이 환호한 기쁜 소식이 있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작품상 등 네 개 부분에서 상을 받았다.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감독 자신도 라디오에서 “그런 일이 왜 일어나겠어요? 일어나도 해프닝이겠죠”라고 웃으며 했던 말이 이제는 엄연한 현실이 됐다.

필자가 과학기술계에 종사하고 있어서일까? 마음껏 박수를 보내고 뒤돌아서는데 “왜 우리는 아직인가?”라는 질문이 불쑥 마음을 자극한다.

분야만 다를 뿐이지 과학기술 분야도 전 세계를 평정한 영화계처럼 창의성을 공통분모로 하고 있는데 그들은 되고 우리는 아직 되지 않은가 말이다.

가슴이 답답하던 차에 TV에서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상 성공 스토리를 보여주었다. 필자에게는 성공 요인으로 보이는 세 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감독의 탁월함, 창의적 시도에 대한 영화계의 수용과 실패 용인, 감독의 리더십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아닐까 한다. 이들 세 가지 성공 요인들은 과학기술계 내에서는 어느 정도 작동하고 있을까? 하나씩 살펴보았다.

먼저 감독의 탁월함은 연구자의 우수한 연구역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은 한 번 해볼 만하다.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노벨상에 근접해 있는 여러 연구자 이름을 듣고 있다. 그 외에도 탁월한 연구성과를 내는 신진 연구자들의 소식이 주기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두 번째 요소인 창의적 시도에 대한 수용과 실패 용인의 경우를 보면, 과학기술계가 ‘실패의 용인’ 면에서는 최근 들어 크게 나아졌다.

하지만 ‘창의적 시도에 대한 수용’은 조금 더 분발할 필요가 있다. 연구예산의 배분을 보더라도 상당 부분은 기존 연구와 연장 선상에 있는 ‘계획된 연구’에 투입되고, 전혀 새로운 창의적 연구에 대한 투자는 아직도 인색한 편이다.

흥행요소라고는 찾아보기 힘들 뿐만 아니라 기존영화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영화 포맷이었기에 어쩌면 실패가 확실해 보였던(실제로도 흥행에 실패한) 봉준호 감독의 첫 데뷔작품 ‘플란다스의 개’에 영화계에서는 기꺼이 투자를 감행하는 것에 비하면 과학기술계도 이러한 용기가 필요해 보인다.

세 번째 요소인 감독의 리더십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은 우리 과학기술계가 영화계로부터 가장 크게 교훈을 얻어야 할 부분이다. 필자는 지금의 봉준호 감독과 영화가 있게 한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영화기획에서부터 제작까지 100% 봉준호 감독의 결정을 존중한 영화제작관계자의 결단’에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잘 알다시피 수많은 투자자와 제작사가 관여하다 보니 ‘흥행 가능성’이 절대적인 요소이다.

자연스레 감독에게 이런저런 요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도 봉 감독의 영화제작에 참여한 제작사와 투자사는 일절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존 관행을 완전히 뒤엎을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에서 조차 사례를 찾기 쉽지 않은 결단을 하였고 결과로 그 선택의 옳음을 입증했다. 과학기술계도 어쩌면 영화계 못지않게 복잡한 시스템인지 모른다.

기술 분야별로 수많은 산학연관 이해관계자의 조합으로 구성돼 있다. 이를 투명하고 효과적으로 운영하려면 연구기획 및 실행의 전 과정에서 복잡다난한 의사결정과정을 거치는 것이 어쩌면 불가피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세계적인 과학기술 창의연구자의 육성에 있어서는 차별화된 접근방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과학기술계도 연구자가 연구하기 원하는 연구를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방향으로 ‘결단’하면 어떨까?

영화 ‘기생충’의 이번 쾌거는 한국 영화계가 “어떻게 영화산업에서 창의적인 사람과 창의적인 작품을 어떻게 발굴하고 구현해 나갈 것인가?”를 보여준 좋은 사례였다.

과학기술계에서도 이번을 계기로 창의 연구자의 발굴과 육성에서 더 큰 전진과 발전이 이뤄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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