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투데이 김윤주 기자] ☞세상은 암울했다. 지겹지만 올해는 코로나의 해였다. 많은 게 달랐었다. 그리고 또 달라졌다. 코로나를 피해 사람은 숨었다. 그리고 기계가 대신했다. 어느새 '로봇 세상'이 됐다. 언젠간 올 거 같았지만 성급히 왔다. 모든 일에서 그랬다. 은행·식당·편의점·카페가 변했다. 그 변화가 모두에게 좋은 건 아니었다. 새로운 세상을 위한 대비는 희비를 갈랐다. 발전은 소외를 낳았다. 편리는 특정 세대를 편애했다. 어르신들에게 더 가혹한 세상이 됐다.
☞팀장이 됐다. 급작스러운 전개였다. 직책엔 책임이 동반됐다. 위치가 '올라간다'는 건 동시에 시험대에 '올라간다'는 의미기도 했다. '적응 기간'이란 변명은 얼마 가지 못했다. 능숙함은 능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었다. 노력이 필요했다. 누구보다 바쁘게 또 빠르게 살았다. 우스갯소리지만 이곳에선 숫자 2따윈 없는 듯했다. 1(일) 다음에 다시 1(일)이었다. 일뿐이었다. 상사가 돼보니 옛 상사들이 떠올랐다. 회상 속에서 교훈을 얻었다. 누군가는 ‘교사’가 됐고, 누군가는 ‘반면교사’가 됐다. 팀원들의 의지를 받고 투지를 불태웠다. 중간 위치가 가장 어려운 것임을 알았다. 위도 아래도 쉬운 건 없었다.
☞아이는 컸다. 회사 다녀온 새 저 혼자 자랐다. 어느새 걸었고 또 어느새 뛰었다. 아쉬울 정도로 금방 컸다. 내가 바쁜 만큼 빠르게 자랐다. 한땐 내 몸의 '일부'였고 이젠 내 '전부'가 됐다. 이제 제법 말도 한다. 필요한 말만 한다. 부정적인 말을 특히 잘한다. "놔봐"·"싫어"·"안자"는 참 잘한다. 그래도 재잘대는 모습을 보면 참 사랑스럽다. 육아는 힘들지만 또 그만큼 보상받는다.
☞내년도 불안하다. 코로나가 끝날거란 확신이 없다. 그래서 “잠잠해지면 만나자”는 기약은 여전히 기약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긍정적인 생각이 가진 힘을 안다. 적어도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을 때 보다 힘이 있단 걸 안다. 더 좋은 결과가 올 거란 걸 안다. 그래서 감히 기대한다.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노래한다. 내년엔 더 웃을 수 있길 바란다. 우직한 소가 힘을 주길 바란다. 이겨내주길 바란다. "다들 힘내소" 편집부 김윤주 기자 maybe0412@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