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당] 단칼에 해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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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당] 단칼에 해결하다?
  • 충청투데이
  • 승인 2021년 02월 14일 18시 20분
  • 지면게재일 2021년 02월 15일 월요일
  •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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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을석 충북교육정책연구소장

심심할 때면 흔히 알려진 이야기를 나름대로 음미해 보곤 한다. 요 며칠 동안은 고르디우스 매듭 이야기를 생각해 보았다.

프리지아의 왕 고르디우스는 죽기 전 신전 기둥에 마차를 복잡한 매듭으로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이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을 남겼다. 이후 여러 사람이 매듭 풀기에 도전했지만 얼마나 복잡하고 단단하게 묶었는지 아무도 풀지 못했다. 그래서 풀기 어려운 문제를 고르디우스의 매듭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던 중 동방 원정에 나선 알렉산더 대왕이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 알렉산더도 매듭을 풀어보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처음에는.

마침내 (인내심이 다한 탓인지) 그는 매듭을 푸는 것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고 칼로 싹둑 잘라버렸다. 알렉산더 대왕과 연관되어 전하는 '고르디우스 매듭' 이야기다. 오늘날 이 이야기는 복잡한 문제를 대담한 방법으로 해결했다는 비유로 사용되고 있다. (역시 '대왕'은 남다르게 문제를 해결한다?)

하지만 우리는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알렉산더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푼 것인가? 알렉산더는 복잡한 문제를 단번에 해결한 것인가? 칼을 휘두르는 일각의 행위로 매듭이라는 문제를 없애버린(파괴한) 것은 아닌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몇 가지가 있을까? 첫째는 문제가 문제 아님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둘째는 문제를 풀 방법이 없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셋째는 문제가 무의미함을 증명하는 것이다. 넷째는 문제를 문제 내부의 논리적 구조에 해결하는 것이다. 흔히 쓰는 방법이다. 다섯째는 문제를 문제 외부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는 방법이다.

알렉산더는 첫째부터 셋째를 입증하지도 않았다. 넷째는 시도해 보았으나 포기했고, 다섯째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만약 알렉산더가 그것을 복잡한 매듭인 채로 남겨두었다면 어땠을까? 어떤 사람이 있어, 푸는 방법을 더 연구하고 엮는 원리를 규명하여, 활용하는 방법을 인류의 자산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비록 많은 시간이 걸리고 노력을 끊임없이 기울여야 하겠지만, 그렇게 애쓰는 과정 속에서 인류는 많은 난제를 해결했고, 문명을 이룩하는 자산을 얻었다. 역사 속에서, 인간에게 닥친 문제는 인간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지대한 역할을 해왔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여전히 많은 문제가 있고, 그중에는 풀기 어려운 문제도 상당히 있다. 알렉산더의 칼이 없어 우리가 여전히 수많은 문제 속에 헤매고 있고,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안겨준 과제가 크고 무겁다. 게다가 복잡하기까지 하다. 바이러스의 극복도 극복이거니와 노인, 장애인, 흑인, 저소득자 등 약자를 우선 공격하는 문제, 격리와 단절 속에서 소통과 관계 형성의 문제 등등 풀어야 할 문제가 산더미다.

교육계라고 그리 다르지 않다. 팬데믹 상황에서 지속 가능한 교육체제에 대한 고민이 그중 크다. 비대면 원격교육의 문제, 학습 소외의 일상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간절히 원하는 것은 문제의 해결, 고통의 제거이지만, 그 전에 진지하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자세와 지속적인 공동체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노력 속에 진정한 답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마음을 열고 함께 대화하며 가장 좋은 해법을 찾는 과정이 민주주의다. 사이다 마신 듯한 시원함보다는 고구마 먹은 듯 답답한 절차와 과정이 민주주의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이와 비슷할지 모른다. 답을 던져주는 것은 의미 없다. 문제를 찾고 답을 찾는 길, 애쓰며 함께 하는 길에 사랑(교육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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