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20억원을 둘러싼 가족의 민낯…영화 '멀리가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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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 20억원을 둘러싼 가족의 민낯…영화 '멀리가지마라'
  • 연합뉴스
  • 승인 2021년 02월 27일 12시 57분
  • 지면게재일 2021년 02월 27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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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노라마이엔티·영화사 야경꾼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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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 20억원을 둘러싼 가족의 민낯…영화 '멀리가지마라'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아버지의 유산 20억원을 나눠 갖기 위해 모인 4남매, 그곳에 아이의 몸값을 요구하는 유괴범의 전화가 걸려온다.

영화 '멀리가지마라'는 유산 상속을 둘러싼 가족들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블랙코미디다. 이야기는 인간이 어쩜 저렇게 파렴치할 수 있나 싶은 순간과 돈 앞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심이 이해가 가는 측면을 넘나들며 전개된다.

정씨 가문의 4남매는 겉으로 보기엔 점잖고 평범한 가족이지만, 각자의 사정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유언장에 따라 분배된 아버지의 유산, 첫째부터 막내까지 모두가 자신의 몫이 불만스럽기만 하다.

양말공장을 운영하는 첫째 '정헌구'(손진환)는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고, 둘째 '정헌철'(손병호) 역시 경제적으로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정씨 집안의 문제아 셋째 '정헌규'(최재섭)는 이혼소송을 밟고 있고, 넷째 '정은혜'(이선희)는 평생 오빠들의 기에 억눌려 살아왔다.

이들은 20억원을 달라는 유괴범의 요구에 조카를 살리기 위해 적게는 3억, 많게는 9억의 상속받은 몫을 내놔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조카부터 살려야 하지 않겠냐며 유산을 달라고 형제들에게 강경하게 주장하다가도, 유괴된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는 "이성적으로 생각하자", "경찰에 신고하자"라며 돌변한다.

이 과정에서 가족이라는 혈연관계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현실적으로 묘사된다. 형제들이 각자 가정을 꾸리면서 벌어지는 생활의 격차도 녹아 있다. 그간 서로에게 쌓였던 섭섭함이 폭발하듯 터져 나와 말싸움이 되고 급기야 몸싸움으로 번지기도 한다. 황당하리만큼 뻔뻔한 이들의 내면은 다소 과장돼 표출되지만, 오랜만에 명절에 만난 가족들 사이에서 흔히 벌어지는 말다툼을 연상하게 만들어 공감을 산다.

영화는 75분의 러닝타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촘촘하게 사건을 끌고 나간다. 연극 무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독특한 구성의 연출이 돋보이는데, 이야기는 '유산', '20억', '불청객', '멀리가지마라' 총 4개의 장으로 나눠 전개된다. 다음 장으로 넘어갈 때마다 이야기가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환되는 점이 흥미를 더한다.

촬영도 실제 소극장에 세트를 만들어 진행됐다. 집의 거실에 인물을 제외한 공간은 검은색 어둠으로 채워 인물들을 부각했다. 4남매의 대화를 롱테이크 촬영 기법으로 긴장감 있게 들여다보게 만드는 연출도 영리하다. 여기에 더해 인물들의 직설적인 화법은 극의 몰입도를 높이다.

박현용 감독은 최근 언론시사회 직후 열린 간담회에서 연극 형식을 차용한 배경과 관련해 "독립영화는 예산에 한계가 있는데 고민하다 떠올린 게 연극 무대였다"며 "실제 집을 섭외했다면, 촬영에 제약이 있어 길게 가는 연출법은 실행하지 못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영화는 높은 연기 내공을 지닌 배테랑 배우들의 출연으로 완성도를 높였다. 극의 흐름을 끌고 가는 손병호는 출연 배우들과의 호흡을 자랑하며 "모두 연극무대 출신들"이라고 언급했다. 손병호는 "극의 흐름상 이야기가 변해 최대한 각 장면에서는 감정 표현을 자제했다"며 "나름대로 잘 한 것 같다"며 웃었다.

3월 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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