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투데이 조선교 기자] 올해 공개된 고위공직자 재산내역에서 자녀를 비롯한 직계존비속의 재산 고지 거부 사례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자 고지거부제도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세게 일고 있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제도 폐지의 필요성이 부각된 데다가 최근에는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 이어 ‘부동산 부모찬스’ 역시 암암리에 이뤄졌을 것이란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지만 여전히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29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등에 따르면 올해 공직자 정기 재산변동사항의 공개 대상자 1885명 가운데 34.2%(644명)이 1명 이상의 부모 또는 자녀 등 직계존비속의 재산 고지를 거부했다. 이는 1993년 고지거부제도 도입 이후 최대치로 사실상 3명 중 1명이 고지를 거부한 셈이다. 해당 제도는 앞서 독립적인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직계존비속의 경우 등록의무자(공직자)의 부양을 받지 않는 만큼 신고 대상에서 제외하기 위해 마련됐다. 문제는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도마 위에 올랐지만 이같은 고지 거부로 인해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미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서 조차 10여년간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수차례 지적한 바 있다.
한국법제연구원은 2013년 연구자료를 통해 고위직 공직자나 재무관련직 등에 한해선 본인과 배우자, 부모, 자녀에 대해 재산등록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 이보다 앞서 한국행정연구원은 2008년 ‘한국 공공부문의 부패실태 추이분석’을 통해 직계존비속 고지거부제도가 재산등록제도의 허점으로 지적되고 있다며 부정 축재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선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상당수의 고위공직자들이 이 제도를 활용해 직계존비속의 재산등록을 회피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러한 우려는 최근 공직자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해 대응에 나선 당국의 한계로도 드러난다. 인사혁신처와 경찰청, 국세청 등은 집중심사단을 구성해 최근 공개된 공직자 정기 재산변동사항을 바탕으로 공직자들의 재산형성과정을 집중적으로 살피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고지를 거부한 자녀 등에 대해선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윤리위 관계자는 “고지 거부한 부분에 대해선 심사단 차원에서 별도로 살피거나 추가 자료를 요구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공직자 부동산 투기의혹으로 촉발된 공분은 청년층의 사회적 박탈감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본보 취재진이 충청권 공직자 재산내역을 토대로 등기사항 등을 추적한 결과 공직자들의 자녀 상당수는 2030세대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대전의 한 대학교에 재학 중인 박모(23·여) 씨는 “어린 나이에 부동산 한 채 갖고 시작하는 공직자 자녀와 일반 서민의 출발선이 당연히 같을 순 없을 것”이라며 “특히나 그 부동산이 투기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면 허탈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사태 악화에 공직자 전체에 대한 재산공개를 내세운 정부를 두고 실효성에 의문을 품는 비판도 나온다.
한 청년단체 관계자는 “어떤 공직자가 당당하게 자신의 이름으로 부동산 투기를 하겠나”라며 “자녀도 공개를 거부하게 내버려두는 허점은 그대로 둔채 알맹이 없는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조선교 기자 mission@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