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규의 서예이야기] 탐천지공(貪天之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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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규의 서예이야기] 탐천지공(貪天之功)
  • 충청투데이
  • 승인 2021년 04월 04일 17시 28분
  • 지면게재일 2021년 04월 05일 월요일
  •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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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천지공(貪天之功). 박일규 서예가 제공

[충청투데이 충청투데이]  춘추시대(春秋時代) 진(晉)나라의 문공(文公)은 아버지 진헌공(晉獻公)의 애첩인 여희(麗姬)의 모략에 의해 국외로 추방돼 19년 동안 각국을 떠돌며 모진 고생을 한 끝에 진목공(秦穆公)의 도움을 받아 귀국하여 진문공(晉文公)이 됐다.

 그는 즉위하자 마자 어질고 능력이 있는 선비들을 등용하고 망명시절 고락을 함께하며 도와준 사람들을 빠짐없이 찾아 고루 상을 주고 벼슬도 내렸다.

 이때 진문공과 함께 망명생활을 하며 고생을 같이한 개자추(介子推)는 별로 공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공을 떠벌리며 설치는 꼴이 한심해서 벼슬길에 나가지 않기로 하고 어머니를 봉양하며 살았다.

 이에 그의 어머니께서 물었다.

 “너는 문공의 망명 시절 아사(餓死) 직전에 있는 그를 살리기 위해 허벅지살까지 떼어내 구워 먹일 만큼 정성을 다했는데 오늘날 왜 상을 받지 않으려는 것이냐?”

 그러자 개자추가 대답했다.

 “헌공의 여러 공자(公子) 가운데 유일하게 문공만 남았으니 그분이 군주가 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많은 사람이 각자 자신의 공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우쭐해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재물을 훔치는 도둑질도 큰 죄인데 하물며 하늘의 공을 탐내는 것은(탐천지공:貪天之功)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저런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 없는 일입니다.”

 자식의 굳은 마음을 이해한 어머니는 아들과 함께 면산(綿山)으로 들어가서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야 이를 알게 된 진문공은 아무리 그를 만나려 해도 나오지 않자 그를 나오게 할 목적으로 산에 불을 지르게 했다.

 그러나 개자추는 끝내 나오지 않고 불에 타죽은 시체로 발견됐다.

 그 후부터 불에 타죽은 개자추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해마다 동지(冬至)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은 불을 금하고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이 생겼는데 이로부터 한식(寒食)의 유래가 돼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우리들도 학자의 깊은 마음을 되새겨 보자.

 <국전서예초대작가및전각심사위원장·청곡서실 운영·前 대전둔산초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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