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2003년을 보내는 분노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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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평섭 칼럼]2003년을 보내는 분노의 '소리'
  • 대전매일
  • 승인 2003년 12월 29일 00시 00분
  • 지면게재일 2003년 12월 29일 월요일
  •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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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회장

지난 월요일 둔산의 한 칼국수집 계단에서 40대의 두 남자가 주고받던 말이 지금도 귀를 맴돈다.

"간판 떼고 문 닫아야겠어."

"이 놈의 세상, 정치쇼만 판치는 세상!"

왜 그 사람들이 분노를 토하고 독설을 뱉어내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것은 경기 불황에 시달리고 있고 이런 아픔을 달래 주지 못하는 정부와 민생을 외면하는 정치권에 큰 불만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공식통계에 의하면 올해 전기료를 3개월 이상 내지 못하여 단전을 당하는 세대가 대전·충남에만 3만2911가구가 된다. 물론 이 가운데는 공장을 비롯 군소 업체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전기가 들어오지 못해 불을 밝히지 않고 공장을 돌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그런데도 수십억, 수백억 '차떼기'와 '10% 이상이면…' 하는 식의 정치놀음만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가슴이 뒤집히고 말 것이다. 욕이 나오고 말 것이다.

장사가 안 되고 경제 사정이 어려워 애써 불입한 생명보험, 교육보험 등 보험료를 내지 못해 효력 상실된 것이 346만 건이나 된다고 한다. 액수로는 91조원. 부득이 보험을 해약한 것도 232만 건. 이런 사람들이 정치판을 보면 어떤 욕이 튀어나올까.

지난달 신용불량자는 360만명을 넘었다. 카드빚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경제적 사형선고와 같은 신용불량자가 이 나라에 360만명이나 우글댄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실업자는 얼마나 많은가. 해마다 대학을 졸업하고 쏟아져 나오는 젊은이들이 취업을 못해 거리를 헤매는데 또 40만명의 실업자가 두 달 후면 이 사회를 노크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 문을 열어 줄 수 없는 이 현실. 그래도 정치권은 두 손 들고 있으니 그들의 암담함이 어떠하겠는가.

한 통계에 의하면 금년 해외로 빠져나간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이 공장만 떠난 게 아니라 일자리 10만개도 함께 가지고 갔다고 한다.더 답답한 것은 앞으로 기회가 되면 해외로 옮기고 싶다는 기업이 64%나 된다는 것이다.

도무지 기업하고 싶은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북한의 개성공단이 서면 공장을 옮기고 싶어하는 어떤 기업인은 '그곳에 가면 파업은 없을 것 아니냐'고 했다.

이렇듯 경기가 안 풀리면서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는 것 또한 큰 문제다.

중산층이 무너지고 실업자가 넘치면 사회가 불안하다. 신용불량자가 많아지는 것도 사회를 불안하게 한다. 아니 이미 그런 징조가 나타나고 있는데도 정치는 이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정말 국민을 답답하게만 만들었던 2003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아무 것도 이룩한 게 없는 2003년. 부안 핵폐기물처리장 소요도 상처만 남긴 채 해결을 못하고 해를 넘긴다. 충청인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행정수도 이전' 국회 통과도 오늘 어떻게 될지 불안하다.

우리의 고질적인 교육개혁, 그리고 북한 핵문제도 그렇고 외국인 근로자 문제도 정답을 못 찾고 있다. 거기다 연말을 강타하는 조류독감 파동은 축산농가를 폐허로 만들 판이다. 또 광우병은 무엇인가. 그래도 정치판은 연산군, 광해군 때의 당쟁 틀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지겨운 정치쇼로 얼룩진 2003년. 새해에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까. 우리 모두 옷깃을 여미며 지난날을 반성하고 새해의 야무진 꿈을 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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