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새천년을 여는 충청인①「오정골을 지키는 시민모임」
전국 최초 내셔널 트러스트운동 「땅한 평사기」로 선교사촌 살려 올핸 해안사구 보전등 주력할터
「소중한 도심의 자연 휴식공간과 문화유산이 개발논리에 밀려 사라지고 있습니다. 새천년을 맞아 사희운동은 우리 주변의 작은 것으로 눈을 돌려 지키고 보전하는데 역점을 두게 될 것입니다.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의 목적은 자연·문화 유산을 주민과 자라는 아이들의 열린 공간으로 남겨주는 것입니다』 전국 최초의 내셔널 트러스트(국민 신탁) 운동으로 주목을 받아온 오정골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이하 오시모· 사무처장 박용남 대전 의제 21 추진협의회 사무처장이 땅 한평사기 운동을 전개하며 오정골 선교사촌 지키기에 성공해 시민 운동의 새 지표를 마련했다.
오시모는 오정동 선교사촌이 원룸 아파트로 재개 밥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시민들이 이곳을 지키기 위해 지난해 5월1일 총회를 갖고 활동을 시작했다. 땅 한평 사기는 내셔널트러스트운동에서 가장 적극적인 환경 보호 방법으로 국민이 기금을 모아보전 가치가 있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한 자연·문화 유산을 직접매입하는 것,오시모의 의지에 전국에서 뜻을같이하는 이들이 기금을 보내오는 등 호웅이 이어졌으나 7개월여의 짧은 활동 기간에 수십억원대에 답하는 토지 매입금을 마련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오시모의 오정동 선교사촌 보전은 국민의 호응을 배경으로 힘을 얻은 오시모 회원의 활발한 활동과 이해 당사자들의 양보와 협조가 한데 어울리면서 개발을 원점으로 돌리는 값진 승리를 이끌어 냈다. 오시모 회원들 스스로도 「시민의 순수한 힘이 결집되면서 개발위기의 선교사촌을 되찾고 우리의 열린 공간으로 보전할 수 있었다는 점」에 놀라기도 했다.
한옥에 서구식 실내구조로 지어져 근대 건축사에 혼치않은 사료로 평가받고 있는 오정동 선교사촌은 한남대와 담장을 나란히 하는 3천여평에 형성돼 있다.
이곳은 한남대 설립자이자 초대학장인 인돈 선 생(William Aldem,an Linton)을 기념하는 인돈학술원을 중심으로 아담한 한옥이 수령 50년 이상된 아름드리 나무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지난 1993년 월터 서머빌(Walter Someville) 선교사의 조사에서는 새매. 솔부엉이. 소쩍새 등 천연 기념물과 오색딱다구리, 붉은머리오목눈이, 백합미새등 모두 52종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밝허지기도 했다.
선교사촌은 1954년부터 주로 미국 남장로회 소속 한국 파견 선교사들의 주거지로 마련됐는데 한때는 인접해 있는 침례회 선교사 주택과 항께 40여 세대가 거주하기도 했으나 지난96년 한국이 선교지역에서 제외되면서 선교사들이 귀국.개발 위기에 놓였었다.
박용남 사무처장은 「오시모는 개발 논리 앞에 영원히 사라질지 모르는 자연·문화유산의 보전과 복원을 목표로 하는 한국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시초」라며 「오시모의 성과에 이어 올해는 기구를 구체화시켜 강경 살리기운동, 태안 신두리 해안 사구보전운동 등을 전개할 예정」이라곡 새해활동계획을 밝혔다.
(宋賞杰 기자〉 오정골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박용남 사무처장(오른쪽 첫번째)과 김정동(목원대·두번째) · 김조년 교수(한남대·네번째) 등이 선교사촌을 배경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朴宰用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