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화합으로 함께 하는 세상'이라는 올해 봉축표어에는 뚜렷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너와 나'는 둘이 아니며(不二), 우리 모두 불성(佛性)을 지니고 있다. 우리 마음 속에 '자비와 나눔의 등불'을 켜는 일에서부터 '함께하는 세상', '더불어 사는 세상'을 기대할 수 있다. 갈등과 반목의 시대, 진정성·신뢰의 가치 상실시대, 불확실성의 시대 앞에서 그 의미가 더욱 엄중하게 다가선다.
우리 사회는 천안함 침몰사고로 혼돈 상태에 휩싸여 있다. 결국 북한소행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꽃다운 우리 젊은이들은 그렇게 한 순간에 어이없게 스러져가고 말았다. 북한 잠수함정이 우리 서해를 자신의 안방처럼 드나들었다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럴 때까지 우리는 뭘 했는지. 국가적인 수치다. 유족들의 가슴은 또 다시 시커멓게 멍들고 말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어디 한둘인가. 인간 번뇌는 탐욕과 원망·분노, 어리석음이라는 삼독(三毒)에서 비롯된다는 이치를 새삼 일깨워준다. 요즘 6·2지방선거를 앞두고 '말 정치'가 점입가경이다. 정책 토론을 통해 차별화를 부각시키려는 노력은 뒷전이다. 세치 혀로 상대를 마구 짓이기려고 안달이다. 비방이나 마타도어에만 매달리는 건 비겁한 짓이다. 정치권이 벌이는 '북풍' 논란은 지겹기까지 하다. 이를 악용하는 세력은 역풍을 맞게 돼 있다.
한번 베팅해서 한몫 잡으려는 요행수, 효율성을 위해서라면 편법도 마다하지 않는 불공정 게임 사회에서는 기대할 게 없다. 정치권의 독선과 사회·경제적인 정의 왜곡, 우리 사회 일각의 부패와 비리를 정화시키는 일이 시급하다. 나 자신과 가정, 사회의 가치를 제대로 지키는 것, 소외받는 계층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키우는 일, 그건 필경 자신의 마음에 등불을 켜는 첫 걸음이다. '빈자(貧者)의 일등(一燈)'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