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미얀마(버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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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평섭 칼럼]미얀마(버마)에서
  • 대전매일
  • 승인 2004년 05월 10일 00시 00분
  • 지면게재일 2004년 05월 10일 월요일
  •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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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아웅산 테러' 사건으로 더 잘 알려진 미얀마를 돌아보면서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있었다.

대부분이 저렇게 선량하고 지극한 신앙심을 갖고 사는 가난한 농민들인데 어째서 그렇게 무자비한 권력투쟁이 계속되며 피를 흘릴 수 있을까.

미얀마는 어디를 가나 밀림과 함께 사원, 불탑이 많다.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와불이 모셔진 쉐달라웅 파고다를 비롯 높이 101m나 되는 황금불탑 쉐모도 파고다 등등.

그런데 사원은 언제나 참배자들로 넘쳐나고 있으며 이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맨발로 경내에 들어와야 한다. 심지어 이 나라를 움직이는 장군들도 예외는 없다. 관광객도 물론이다.

하지만 말이 맨발이지 바닥에 깐 돌들이 40도를 오르는 땡볕에 달구어져 그것을 밟고 다닌다는 것은 대단한 고행이다. 발이 뜨겁다 못해 벌겋게 달아올라 중도 포기하는 외국인도 있다.

그러나 미얀마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넓은 사원을 맨발로 돌아다니고 심지어 오물로 질퍽거리는 화장실도 간다. 불심이 깊기 때문이다.

95%가 불교신자인 이 나라는 국가가 절대적 의지로 불교를 보호한다.

그런데 지금 미얀마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1992년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57세의 가냘픈 수지 여사와 집권 군부 사이에 유혈충돌이 되풀이되고 있다.

물론 수지 여사는 지금도 연금 상태에 놓여 있고 미국은 그녀의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가장 큰 유혈사태는 1988년 8월 8일 민주화를 외치며 저항하던 대학생 등 6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무자비한 군대의 발포로 희생을 당한 것. 수지 여사는 체포됐고 군부통치가 다시 시작됐다. 그후에도 크고 작은 유혈사태가 계속됐으며 미국은 미얀마에 대한 경제제재를 시작했다.

누구나 이 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불편한 것은 밤거리가 매우 어두운 것이다. 전기는 있으나 외화벌이로 이웃 태국에 수출하기 때문에 일반 가정은 1일 8시간밖에 전기를 사용할 수 없다.

그것도 120볼트여서 북한처럼 TV 정도만 사용할 수 있고 냉장고, 세탁기 같은 전자제품은 무용지물이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도 8층 이내는 사용할 수 없다. 그러니 거리의 가로등을 밝힐 형편도 아니고 명색이 국가 수도에 있는 국제공항 대합실은 찜질방처럼 덥고 어둡다. 전기 수출은 미국 경제제재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도리가 없다는 것. 그러나 소령 이상의 군인이 이사를 오면 그 동네는 높은 전압의 전기를 쓸 수 있다.

이곳 미얀마는 태국·라오스 3국 접경지역에 메콩강이 합류하는 소위 '황금의 삼각지대'(골든트라이앵글)에 있어 세계 최대의 마약 생산지로 유명하다. 미국에 거래되는 히로인 60%가 여기서 공급될 정도다.

이 마약 유통조직으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미얀마 국적의 쿤사다. 미국의 CIA나 FBI를 비롯 세계 여러 나라의 경찰이 그를 체포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지만 번번이 허탕을 치는 것 역시 미얀마의 군사정부가 그를 보호해 주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그것은 말할 것 없이 쿤사의 마약조직에서 외화를 조달받기 때문이라는 것.

따라서 당초 지난 4월 13일까지 수지 여사를 석방하겠다고 미국에 약속하고도 그럭저럭 버티는 미얀마의 뒤에는 이런 사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그러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강수를 쓰면 쓸수록 고통받고 죽어나는 것은 국민이 아닌가.

이 글을 쓰면서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은 우리나라의 50년대로 되돌아간 듯한 가난하고 열악한 환경, 그 속에 살면서도 불덩이 같은 돌바닥을 맨발로 걸으며 부처님 앞에 합장하는 미얀마 사람들의 착한 모습이다. 그리고 그들 머리 위에 춤추는 피 묻은 권력의 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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