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그림자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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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그림자②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4년 08월 27일 20시 30분
  • 지면게재일 2014년 08월 28일 목요일
  •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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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로]
   
 

▶위화도 회군을 통해 역성혁명에 성공한 이성계는 개경의 지기(地氣)가 쇠락했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수도를 옮기려했다. 500년 도읍지 개경(개성)이 두렵고 두려웠기 때문이다. 당시 개경의 권문세족과 백성들은 새 왕조의 탄생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였다. 악몽에 시달리던 이성계는 수도 이전을 서둘렀고, 신하들로 하여금 한반도 최고의 명당자리를 찾게 했다. 후보지는 계룡(신도안·계룡시 남선면 일대)과 무악, 백악산(북악산)이었다.

▶이성계는 계룡산을 직접 찾았다. 이때 동행한 무학대사는 '산의 형국이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이라 했다. 이름하여 계룡(鷄龍)인 것이다. 이성계는 곧바로 도읍지건설을 시작했고 10개월 동안 궁궐터를 닦았다. 하지만 개국공신이자 관상학·풍수지리에 능했던 하륜의 반대에 부딪쳤다. 하륜은 “계룡엔 강이 없고 나라 한가운데 있지도 않으며 산세가 흉해 천년사직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호주 '캔버라'는 수도가 되기 전 사람이 살 수 없을 만큼 황량한 곳이었다. 뜨거웠고 추웠으며 때론 식생의 순리마저 부정했다. 그러나 인공호수를 만들고 나무를 심자 도시의 기온이 바뀌고 얼굴이 바뀌었다. 푸트라자야는 쿠알라룸푸르와 불과 20㎞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전시행정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지금은 '아시아의 관광관문'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브라질리아(브라질)는 세종시처럼 행정수도 건설을 공약으로 내건 대통령후보에 의해 시작됐다. 미국 워싱턴, 독일 베를린, 캐나다 오타와, 터키 앙카라,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도 모두들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하고 지방분권을 실현하기 위해 만든 행정수도 혹은 행정도시들이다.

▶'정감록'에 따르면 '개경은 500년 도읍지, 한양은 400년, 계룡산의 신도안은 800년 도읍지'라고 했다. 하지만 한반도 수도는 예언서와 다르게 '한양 600년'을 넘기고 있다. 어느 누구도 ‘수도 서울’에 토를 달 사람은 없다. 그러나 ‘in서울’로 인해 나머지 국민들은 ‘out사이더’ 신세가 됐다. 삼권(三權)이 몰리다보니 사람들도 몰려있다. 세종시는 대한민국의 그림자가 아니다. 국회가 내려오지 못하리란 법도, 청와대가 내려오지 말란 법도 없다. 그림자는 빛이 되지 못한 어둠들의 증오다. 마음이 굽으면 그림자도 굽는다고 했다. 정치권은 행정도시를 적막한 그림자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천년의 빛으로 세상을 새롭게 비추게 만들 것인지를 답해야한다. 반쪽 행정, 반쪽 국감, 반쪽 공무원으로는 천년사직을 고할 수 없다.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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