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송세월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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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송세월①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4년 09월 03일 20시 30분
  • 지면게재일 2014년 09월 04일 목요일
  •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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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로]
   
 

▶<아, 바닷물이 차오를 때 얼마나 두려웠을까/얼어붙는 체온 더듬으며 얼마나 두려웠을까/그 짐승 같은 어둠이 또 얼마나 두려웠을까/살려달라는 비명 터질 때 얼마나 두려웠을까/눈물이 바다를 적십니다/우리의 가슴도 잠겼습니다/우리의 믿음도 잠겼습니다/통한의 바다에서 애타게 그 이름을 불러봅니다/꽃잎처럼 흩어진 가여운 그 이름을 불러봅니다/맹골수도(孟骨水道) 그 바다를 보며/청춘의 주검을 가슴에 묻습니다/묻고 또 묻은들 가슴에 맺힐 하얀 물빛 없으련만/먹빛바다 보며 푸른 꿈을 바칩니다/스러져간 청춘이여, 스러진 노여움이여/떨다간 아픔이여, 떨어져나간 슬픔이여/다시 꽃이 되어/다시 꽃이 되어/천상의 꿈으로 피어나소서/꿈에 그리던 그 탐라의 봄에는 지금 푸른 꽃이 피어납니다/그 꽃을/미워하지 마세요/그리고/생각나거들랑 그 꽃으로 지상의 새잎을 틔우소서> 세월호가 맹골도에 수장되던 날, 전국편집기자협회보에 기고한 시(詩)다.

▶그리고 넉 달이 지났다. 세상은 온통 세월호에 갇혀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꽁꽁 묶여있다. 화해와 용서가 없다. ‘내 탓’은 보이지 않고 ‘네 탓’만 있다. 이러다보니 어느 사람 하나 나서서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얘기를 하지 못한다. 아니, 쉬쉬하기에 바쁘다. 입 뻥긋했다가는 유탄을 맞을 게 뻔해서다. 어른들 잘못으로 아이들이 시퍼렇게 질린 바다 밑으로 낙화했을 때, 대한민국은 달라지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달라지지 않았다. 대통령도 적폐를 바로잡겠다고 큰소리쳤지만 바로잡지 못했다. 정부도, 여당도, 야당도 틀려먹었다. 진보도, 보수도 다 틀려먹었다.

▶책임지는 인간이 없다. 당연히 사과하는 인간도 없다. 서로가 지지 않으려고 하니 결국은 모두가 진 것이다. 장사를 망쳐 길거리에 나앉게 생겨도 유족 눈치를 보고, 민생법안이 턱밑까지 쌓여있어도 유족 눈치만 본다. 대통령은 불통이고, 가신들은 먹통이다. 여당은 고집불통이고, 야당은 ‘애통’과 ‘분통’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 참척(慘慽)을 당한 유가족에게 필요한 건 차가운 논리가 아니라 위로다. 오죽했으면 교황이 나서서 대한민국을 위로했을까.

▶우린 문제해결능력을 거세당했다. 남이 하니까 그냥 한다. 병신 소리 안 듣기 위해 곁가지만 붙잡고 늘어진다. 대통령과 정치권은 진정성 있게 유족의 손을 잡으라. 유족들도 이제 그만 대한민국의 손을 잡으라. 국민들도 부끄러운 민낯을 펴고 제자리로 돌아가라. 울돌목에 휘몰아치는 ‘명량’에는 열광하면서, 맹골도에 울려 퍼지는 진혼곡엔 담담한 것이 이 시대 경박한 정서다. 한없이 쪽팔리다.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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