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송세월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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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송세월②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4년 09월 10일 20시 18분
  • 지면게재일 2014년 09월 11일 목요일
  •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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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로]
   
 

▶중국 계몽주의 지식인 량치차오(梁啓超)는 1910년 ‘조선 멸망의 원인’이란 글에서 우리 민족성을 강도높게 비판했다. "조선 사람들은 화를 잘 낸다. 모욕을 당하면 곧장 팔을 걷어붙이고 일어난다. 그러나 그 성냄은 얼마 안 가서 그치고 만다. 한번 그치면 죽은 뱀처럼 건드려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는 한국인의 병통(病痛)을 조롱한 것이다. 300여명의 생때같은 목숨이 눈앞에서 수장됐을 때 대한민국은 분노했다. 그리고 팔을 걷어붙이고 분연히 일어났다. 하지만 거리투쟁을 하고, 전국순례를 하고, 동조단식을 한 것 이외에는 죽은 뱀처럼 굴었다. 지도층들 또한 ‘무릇 장수된 자의 도리는 충(忠)을 좇는 것이고 충은 백성(民)을 향해야 한다’고 떠들어댔지만 忠과 民은 영화속에서나 있었다.

▶참척을 당한 부모가 과연 누구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일각에선 ‘이만하면 할 만큼 한 것 아니냐’거나 ‘이제 정상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느냐’는 소리도 들린다. 끈질기게 물고 뜯는 이 상황이 지겨워진 것이다. 세월호를 언제 '세월' 속으로 떠나보내야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책임을 묻지 않는 세상에선 용서, 구원, 감사라는 따스한 감정이 살아남기 힘들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세상, 범법자에게 합당한 처벌을 내리지 않는 세상은 존엄성이 훼손된 사회다. 국민의 정신적 트라우마는 ‘만일, 내 아이에게 이런 변고가 일어난다면…’이라는 알량한 위기감에서 비롯됐다. 가슴이 미어지고 찢어진 것도 바로 그 동질감 때문이었다.

▶세월호는 지금껏 우리가 살아온 삶의 방식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세월호를 세월속에 묻을 순 없지만, 묻어야만 하는 현실을 모두는 인정한다. ‘명량’의 바다에서 백성의 온전한 삶을 건져올렸듯 ‘진도’의 바다는 우리들의 온전한 가치를 되묻고 있다. ‘감히 살 것을 생각하지 않고’ 한 명의 아이라도 더 구해내기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진 교사와 승무원도 있잖은가. 꿩이든 닭이든 빨리 굿판을 걷어라.

▶한국의 적폐는 누가 뭐래도 한국인의 냄비근성이다. 빨리 끓다가 빨리 식고, 잔뜩 흥분했다가도 금세 잊어버리는 조로증, 적나라하게 얘기하면 조루증이다. 어쩌면 이 비열한 냄비근성이 우리 사회를 망쳤지만 이제는 그 저열한 비등점의 폭발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는 않되, 세월호 문제는 빨리 매듭지어야 한다. 반목과 갈등, 분노와 용서가 화학적 결합을 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슬픔은 결코 용해되지 않을 것이다. 허송세월로 보낸 5개월은 세월호 가족을 두 번 죽였다. 데모를 하든, 판을 갈아엎든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아닌가.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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