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초&꽁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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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초&꽁초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4년 09월 17일 20시 34분
  • 지면게재일 2014년 09월 18일 목요일
  •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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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로]

▶골초였던 시인 오상순은 '꽁초'에서 음을 따 공초(空超)라는 호를 만들 정도로 끽연가였다. 비움마저도 초월한 사람이라는 뜻이니 담배연기가 곧 비움이고 채움이었다. 오죽했으면 헤비스모커(하루 100개비 이상 피움)인 그를 위해 전매청에서 매일 담배 10갑을 공짜로 보내줬겠는가.

오상순은 담배를 '세상 근심걱정을 잊게 해주는 풀'이란 의미로 '망우초(忘憂草)'라고 이름 지었다. 그의 묘소 상석(床石)에는 돌 재떨이와 함께 아홉 자로 그의 인생을 간단하게 정리하고 있다. "몹시 담배를 사랑하다."

▶정부가 담뱃값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10년만의 인상이다. 현재 우린 담배 갑당 354원의 건강증진기금을 내고 있다. 정부는 이를 통해 1년에 7조원의 세금 수입을 올린다. 담뱃값이 1000원 오르면 세수는 2조 7678억원, 1500원 오르면 4조원 늘어나게 된다.

다른 나라들의 담뱃값은 얼마나 될까. 노르웨이가 가장 비싼데 1만 6477원이다. 호주(1만 6364원), 뉴질랜드(1만 3182원), 영국(1만 1705원), 캐나다(9600원), 네덜란드(7955원), 이탈리아(7045원), 미국(6932원), 일본(6023원)도 金담배다. 이런 나라에서 ‘까치담배’ 빈대를 붙는다는 건 그야말로 불속으로 뛰어드는 모험에 가깝다.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담배에 불을 붙였더니 이제는 담배에 불을 붙이면 슬픈 일이 날아와 앉는다는 어느 시인의 노래가 있다. 이제 흡연파들은 인간 정글에서 쫓겨나 창백(蒼白)에 대고 담배연기를 뿜는 처지다. 식당과 술집에서 쫓겨난 건 예전 일이고 공원, 거리에서도 추방당했다.

이제 골목길이나 빌딩 구석에 처박혀 설움을 흡입할 수밖에 없다. 이보다 더한 궁상은 없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고개를 쭉 빼고 붕어담배(뻐금거림)를 피는 모습은 처량함을 넘어 처연하기까지 하다. 수명단축을 뻔히 알면서도, 열심히 빨아대는 생명의 연소, 그 뜨거운 흡입은 일상의 발화점이자 금단의 주검이다. 아,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에서 눈물이 뚝뚝뚝 떨어지고 있다.

▶대선 전엔 증세 없는 복지를 안 한다더니 대선 후에는 복지 없는 증세를 하고 있다며 아우성이다. 골초들의 입이 댓발이나 나와 있다. 비싸다고 안 피우는 게 담배였다면 애초부터 폐활량을 늘리며 잔혹한 매연을 집어넣지도 않았으리라.

사회로부터 졸지에 소박맞고 방화범이 돼버린 흡연론자들은 이제 담뱃값 때문이라도 이 처절한 ‘불장난’을 끝내야할지도 모른다. 창문 너머로 눈부신 햇살이 스멀스멀 담배연기처럼 쏟아지고 있다. 밤새 텅텅 비워낸 몸속에 잿빛 연기를 뿜어 넣을 때의 달콤한 최음이 떠오르며, 조바심이 탄다.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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