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가 가을로 오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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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가 가을로 오는 까닭은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4년 09월 24일 21시 15분
  • 지면게재일 2014년 09월 25일 목요일
  •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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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로]
   
 

▶가을은 연어의 고향이다. 이들은 강에서 태어나 몇 개월쯤 살다가 바다로 떠난다. 대양(大洋)의 꿈이다. 어릴 적부터 품는 희망의 그릇이 사람의 포부보다 크다. 치어가 두려움을 깨고 바다로 나가는 건 두려움을 몰라서가 아니라, 두려움을 기꺼이 껴안는 도전이다. 바다는 두렵고 또 두렵고 두려운 대상이지만 이들에겐 극복의 대상일 뿐이다. 바다에서 서너 살까지 사는 동안 그 두려움은 용기로 바뀌고 희망으로 바뀐다. 어른이 되었다는 증명서다. 못 견디게 고향이 그리운 어느 가을날, 이들은 다시 두려움을 안고 태어난 강(하천)을 향해 역류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마치 먼 바다에 대한 그리움을 주체할 수 없어 떠났듯,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주체할 수 없어 다시 찾는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가는 길은 힘겹고 더디다. 살기 위해 가는 여정이 아니라, 죽기 위해 가는 장엄한 유영이기에 그러하다.

▶가을은 기억의 계절이다. 어딘가 알 수 없는 먼 바다로 나갔던 새끼물고기가 태어난 강으로 어김없이 돌아오는 것은 기억이다. 연어를 '신의 물고기'라고 부르는 것도 모천(母川)의 냄새를 기억해내는 능력과 1억분의 1까지도 알아내는 놀라운 후각 덕분이다. 북해도와 베링해(海), 북태평양을 한 바퀴 돌아오기까지의 여정이 어디 쉬운가. 때로는 포식자에게 당하고, 때로는 돌부리에 찢기면서도 주검의 소하(遡河·강을 거슬러 올라감)를 하는 건 온전한 희생이다. 하지만 제 살던 곳으로 무사히 돌아올 확률(회귀율)은 2%도 채 되지 않는다. 수많은 천적들이 이 갸륵한 모정에 상처를 주고, 상처에 물곰팡이가 피는 혼인색(婚姻色)을 떠안기기 때문이다.

▶가을은 연어의 계절이다. 이들은 산란기간 중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체내 지방을 소비한다. 자신의 육신을 만신창이로 만들면서 산란의 마지막 밤을 치르는데, 그 행위는 단순하다. 암컷이 오미자 빛 붉은 알을 쏟아내면 수컷이 우윳빛 정자를 방사하는 것이 시작이자 끝이다. 교미를 끝낸 연어는 지친 몸을 물결에 맡긴다. 이제는 피할 일도, 두려워할 일도 없다. 통나무나 바위에 걸터앉은 채 며칠이고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지도록 소진한다. 그리고 숨소리를 물살에 툭 던진다. 물고기의 윤회(輪廻)다.

▶가을은 사랑의 계절이다. 가을이 되면 사람들은 모천 회귀를 통해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또한 연어처럼 잃어버린 유년의 꿈을 찾아떠나기도 한다. 돌아갈 본향이 바다가 아니더라도, 가을의 냄새를 품기 위해 세월을 거슬러 유영한다. 만산홍엽(滿山紅葉)이다. 인생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자, 떠나자. 연어가 꿈꾸었던 그 가을 속으로….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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