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인생이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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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인생이여 파이팅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4년 11월 19일 18시 19분
  • 지면게재일 2014년 11월 20일 목요일
  •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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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로]
▶30년 전 아버지는 자식의 공납금을 위해 밭뙈기를 팔았다. 소도 팔았고 키우던 강아지도 팔았다. 그런데 언젠가 사과 한 알을 몰래 따먹었다가 혼꾸멍난 적이 있었다. ‘자식농사’를 위한 밑천이 ‘과수농사’였는데 왜 썩은 걸 먹지 않고 온전한 걸 먹었냐는 게 이유였다. 과수원집 아들은 까치가 쪼아 먹다 남긴 사과를 먹고, 슈퍼마켓 아들은 유통기한이 끝난 과자를 먹어야한다는 걸 잠시 잊었던 것이다. 하지만 원망하지 않았다. 단지 죄라면 배고픈 입(口)이 문제였으니까. 그 사건이후 난 사과를 돈 주고 사먹지 않는다. 비싸서가 아니라 그때의 차가운 눈물을 가여운 '입'이 미리 알고 있기 때문이다.

▶춥다. 그냥 추운 게 아니라 뼛속까지 시리다. 겨울은 겨울다워야 한다며 ‘서정적 허세’를 부려보지만 역시 추운 건 폭거다. 더더욱 맘이 여릴 대로 여려진 상태에서는 거의 고문에 가깝다. 수능이 끝난 후 내내 혼란스러웠다. 낙엽이, 자신의 붉은 나신을 내어주는 걸 바라만 봐도 그냥 눈물이 흘렀다. 자신도 모르게 떨궈지는 눈물은 차디차다. 그리고 적막하다. 몸으로 한기(寒氣)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몸이 마음의 저변까지도 얼리기 때문이다. 이제 작은 산 하나를 넘었을 뿐인데 뭐 그리 야단일까 마는, 아들의 가슴팍을 꼭 끌어안자 내 가슴이 시려왔다.

▶30년 전, 대학고사를 본 아버지는 수학(數學)을 망쳤다. 문제는 있었으나,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대학, 직장, 연애, 결혼, 인생으로 이어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시작됐다. 한국에서의 수학점수란 그런 것이다. 30년 후, 수능을 본 아들은 수학을 망치지 않았다. 고작 2문제만 틀렸다. 그런데 결과는 3등급이다. 비루먹을 물 수능이 ‘학문’을 ‘항문’으로 만들었다. 어려워도 문제고 쉬워도 문제다. 그러나 어쩌랴. 국·영·수 점수대로 팔자가 바뀌는 이 나라, 이 교육의 저급한 스캔들이 문제인 것을. 실망하지 마라. 아프니까 청춘이고, 저리니까 중년이다. 그리고 쑤시니까 노년의 삶 아니던가.

▶아들아, 정답이 안 보인다고 겁을 냈더냐. 세상살이에 정답은 없다. 인생, 저 먼발치에 있는 ‘해답’을 찾기 위해 척후병까지 보내 정탐도 해봤지만 인생은 답하지 않았다. 어쩌면 정답이란 애초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찾아가는 거다. 보이지 않으니까 가보는 것이고, 안보이니까 두드려보는 것이다. 산을 넘으면 또 다른 산이 있는 건 불찰이 아니라, 예고된 숙명이다. 때론 그 길이 불온하고 불손하지만 우리, 도망치지 말자. 인생에 대해 변명도 하지 말자. 네가 만점은 못 받았어도 너의 노력만큼은 정녕 만점이었다. 네 인생이여, 파이팅.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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