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삼류다방에서 청혼했다. 다소 달뜬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카페인의 용기(勇氣)’가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 커피는 저급했고 달았다. 너무 달아서 설탕물 같았다. 밍밍하지만 깔끔한 아메리카노도 아니고, 방금 샤워를 마치고 나온 듯 우유거품이 예술인 카푸치노도 아니며, 에스프레소 '하나'와 우유 '넷'이 만난 카페라떼도 아니었다. 어쩌면 입에서는 초콜릿, 휘핑크림이 합궁한 카페모카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촌스럽고 싼티 나는 ‘진달래 커피’를 마시며 난생처음 아주 달달한 꿈을 꾸었다.
▶커피는 문향(文香)이 시작된 곳이다. 인생의 시(詩)가 만들어진 곳이고, 데모크라시의 거친 심호흡이 시작된 곳이다. 그녀 손을 처음으로 잡던 설렘과 떨림의 발원지였고, 가난하고 허무에 젖은 예술가들의 집성촌이었다. 간혹 심야 술집 문이 닫혔을 땐 연기처럼 스며들어 깡소주(강소주)를 마시던 대폿집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커피숍'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매개(媒介)가 아니다. 인스턴트 사랑과 인(in)스턴트 만남을 접붙이는, 그냥 인(人)스턴트 공간일 뿐이다. 사람들이 '커피'를 '코피'나게 마시기 시작했을 때, 이미 그건 기호가 아니라 중독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난 커피숍 대신 소줏집을 찾는다. 양철지붕 아래, 빗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마시는 소주야말로 비처럼 달다. 한잔에 6만원하는 코피 루왁(Kopi Luwak)보다 여덟 잔에 2000원하는 소주가 더 인간적인 맛이기 때문이다.
▶'습관'을 거꾸로 하면 '관습'이 되듯 우린 각성(覺醒)의 삶을 잃었다. 설탕과 프림처럼, 적당한 '타협'도 하지 않는다. 한번 빠지면 중독까지 간다. 중독은 뜨겁게 미쳐가는 짓이다. 그걸 알면서도 기꺼이 미치는 건, 행복이란 절대 리필(refill)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어느 누구도 슬픔을 멈추라고 권할 수 없다. 그냥 멎을 때까지, 기다릴 뿐이다. 이 겨울, 여름 같은 커피가 더더욱 차갑게 느껴지는 것은 ‘바람’때문이 아니다. 그냥 우리네 삶이 ‘겨울’이기에 그렇다.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