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原住民)들은 담배를 쫓아냈다. 동시에 애연가들은 아파트에서 쫓겨났고 식당과 거리에서 쫓겨났다. 아내로부터 쫓겨났고 아이들로부터 쫓겨났다. 애인에게마저 '재떨이 신세'가 되어 매몰차게 버림받았다. 비행기 안에서 흡연하고 버스, 열차, 택시에 재떨이가 장착돼 있었던 90년대는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다. 국가에게 소박맞으면서까지 피우는 건 자학이다. 국가에게 호주머니가 털리면서까지 피우는 것 또한 자학이다. 자학과 자학이 합쳐지면 흡연의 근거가 아니라 금연의 명령이 된다. 국가가 고혈을 짜며 기만할 때 남은 고혈마저 내어줄 순 없다. 담배를 비싸게 파는 건 국가의 이기심이다. 중독시켜 놓고는 끊으라고 하는 건 배짱이 아니라 폭행이다. 블루칼라들의 고단한 정신적 연소, 담배와의 이별은 그러함으로 절규다.
▶소설가 이외수는 하루에 8갑, 보통 4갑을 피웠다. 그러다가 몇 년 전 담배를 끊었다. 비결은 간단했다. '존버정신'을 지킨 것이다. '안 피우면서 열심히(X나게) 버티는 정신'을 이른다. 쉽게 생각하자. 끊는 건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교유(交遊)다. 그 옛날 청정했던, 아주 온전했던 몸을 다시 얻을 수 있다. 레이블이 채 떨어지지 않은 ‘날것’의 몸과 재회할 수도 있다. 떨리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다. 물론 그 저변엔 켕기는 두려움 또한 크다. 두터운 친교와 이별해야 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몸에 착근한 니코틴은 담배를 피워온 세월만큼이나 몸을 몹시나 괴롭힐 것이라는 사실이다.
▶상실감을 잊기 위해 피웠으나 그것으로 인해 상실감을 얻었다. 흡연은 담배를 태우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태우는 것이었다는 전지적(全知的) 근거로 위안을 삼을 뿐이다. 어렵겠지만 폐구(閉口)다. 입을 다물 것이다. 담배는 끊는 것이 아니라 참는 것이고 금연은 1달, 1년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단 하루만 참고 견디면 이뤄지는 것이라 했다. 어제 했던 '그 하루'를 오늘 한 번 더 하면 되는 거라고…. “누가 한말인지, 말은 쉽다.”
나재필 편집부장 najepil@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