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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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살아남기
  • 충청투데이
  • 승인 2015년 05월 25일 18시 53분
  • 지면게재일 2015년 05월 26일 화요일
  •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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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전인준 음성여중 교사
얼마 전에 인터넷으로 뉴스를 검색하다 경악할만한 사진을 보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진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시화(?)였다. 초등학생이 시를 쓰고 누군가의 삽화가 그려진 시 한 편. 이 시를 쓴 학생이나, 이 시를 포함해 시집을 펴낸 출판사 관계자를 비난의 시선으로 보거나 나무랄 생각은 조금도 없다. 이 시를 지은 학생의 다른 작품을 접해 본 적이 없어 그 학생의 작품 세계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도 없다. 다만, 이 시는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살아가는 필자에게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기회가 됐다.

필자의 자녀들도 역시 대한민국의 많은 아이들처럼 학원에 다닌다. 물론 엄마가 요일별로 스케줄을 짜 줘야 할 만큼 여러 종류의 학원을 전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아이들 입장에서는 학원에 다니느라 힘들고 피곤하다고 생각할 것이라 짐작된다. 매일은 아닐 수도 있지만 가끔은, 아니 종종 가기 싫은 마음을 가질 것이다.

앞에 언급한 시의 말하는 이는 학원에 가기 싫은 날 엄마를 먹어 버리고, 이빨을 뽑고, 머리채를 쥐어뜯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엄마에게 처참하고 잔혹한 일을 하고 싶을 만큼 학원에 가는 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힘겹고 고통스럽다는 것일까? 학원에 가기 싫다는 이유로 엄마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엄마라는 존재는 아이에게 별 것 아닌, 또는 끔찍스런 존재란 말인가?

우선 변명을 좀 하고 싶다. 주변의 엄마들을 보면 엄마의 퇴근이 늦어 집에 아이를 혼자 두고 방치하는 것이 걱정돼 학원에 보내는 경우가 많다. 집에 아이 혼자 혹은 아이들끼리 두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게임으로부터 아이를 떼어 놓기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다. 어른이 없는 집에 아이들끼리 모였을 때 예전처럼 건전한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믿기 어려운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원 선생님의 지도 아래 친구들과 이런저런 활동이라도 하며 엄마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의 시간을 보내도록 하는 것이다. 직장맘이 서글퍼지는 시점이다. 엄마가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 경우도 학원을 보내는 이유는 비슷하다. 엄마가 집에 있어도 방과 후에 스마트폰이나 게임 등으로부터 내 아이를 보호하기 쉽지 않다. 아이들이 심심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잊은 것은 이미 오래 됐다.

그런데 문제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예·체능 활동을 하러 다니던 학원이 공부하는 학원으로 교체되면서 생겨난다. 필자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언제부터 공부가 싫어졌는지를 물어보니 아이들은 고학년이 되면서 공부가 싫어지고 시험이 싫어졌다고 했다. 이런 것들이 싫어진 이유의 근본에는, 안타깝지만, '엄마'가 있었다. 공부나 시험에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주는 사람이 엄마이고, 시험을 못 보았을 때 가장 부담스러운 사람도 엄마인 것이다. 대한민국의 엄마들은 왜 사랑하는 아이들을 공부와 시험에 묶어두는 것일까? 자식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성적과 결과 확인에 쏟는 것일까? 질문에 대한 답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누구나 답을 알고 있기도 하고 모르고 있기도 하다. 어차피 답을 찾기 위해 질문한 것도 아니다.

공부나 성적으로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면 좋은 엄마인 걸까? 대한민국 엄마들은 왜 이렇게 자식의 미래가 불안한 걸까? 목숨보다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이런 미움을 받으며 '대한민국의 엄마로 살아남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시에 쓰인 언어를 직설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올바른 시의 이해가 아니다. 그러나 아이의 마음이 강렬함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라면 이제, 엄마들은 아이의 손을 끌고 등을 밀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이다. 마음을 나누는 것이 대한민국에서 엄마도 아이도 행복하게 살아남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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