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와 불안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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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와 불안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 충청투데이
  • 승인 2015년 06월 07일 18시 53분
  • 지면게재일 2015년 06월 08일 월요일
  •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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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감연희 설치미술가
약국에 마스크가 동이 났다. 거리가 썰렁하다. 메르스 광풍이 도시를 잠식해 나가고 있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메르스에 대한 공포와 정보들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괴담일까?

광우병 괴담이나 천안함 괴담, 세월호 괴담 등 다수의 괴담들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한 가지 원인이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그 괴담이 유포되고 일파만파 될 때까지 혹은 그 이후에도 그 괴담의 정확한 정보가 올바르게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체가 불분명한 정보는 불안과 공포를 키운다.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없을 때 괴담과 음모는 바람보다 빠르게 세상을 뒤덮는다.

불안과 공포는 한국사회를 무차별 질주로 내몰았다. 거기에는 지나간 IMF 경제위기가 큰 몫을 했다. 그 시기를 거치면서 우린 두 가지를 확인했다. 세상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냉혹함과 내일은 늘 불안하다는 현실이다.

애초에 정부는 메르스 공포의 확산을 막기 위해 최초 환자가 나온 병원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국민에게 불안과 공포를 떠넘기는 무책임함으로 보인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메르스 확산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국민들의 불안과 공포가 얼마나 큰지 헤아리지 않고 괴담과 루머, 음모론 유포자를 색출해서 처벌한다고 메르스 확산이 멈출까? 메르스처럼 치료약도 백신도 없는 전염병에 단 한 명의 환자라도 발생했다면, 정부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물샐 틈 없는 방역체계를 가동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에서 경험했듯, 사고 수습에는 골든타임이 있기 마련이고, 이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누구나 행복을 꿈꾼다. 그러나 신기루 같은 행복은 늘 멀다. 다들 죽을 힘을 다해 달리지만 거리는 쉬 좁혀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질주하는 기차에서 내리려 하지 않는다. 내가 내리면 나만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낙오는 나의 죽음이자 곧 가족의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불안과 공포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뼛속 깊이 박힌 이 트라우마가 뿌리라면, 이 상처를 키운 건 신자유주의적 경제논리다. 이 논리로 뒤집힌 세상은 너 죽고 나 살자는 악심의 투전판이 됐다. 경쟁의 정글에서 생존법칙만 익힌 아이들은 이제 10억원을 주면 10년 감옥살이도 할 수 있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대부분의 대형 사고와 참사 뒤에는 정부의 역할 부재와 개인의 탐욕이 있다. 그 사이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것은 국민이다. 대한민국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건 불안과 슬픔을 넘어 분노와 공포가 됐다. 우리는 이제 불안과 공포에 익숙하다. 이해할 수 없는 정부의 행태에 넌더리나고 매일같이 만나는 타인이 지옥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신뢰할 수 있는 정부가 존재하기는 한 것일까? 정권에 불리한 정보는 절대 공개하지 않는 정부의 불통과 불투명성을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는 것일까? 이번 주 메르스의 확산 추이를 보면 정부를 최소한이나마 믿을 수 있을지, 아니면 확산이 줄 때까지 자가 예방에 나서야 할지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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