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짐작'이 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면 믿겠는가. 한자어로 '짐작(斟酌)'이다.'짐(斟)'은 '술잔을 주고받다'이고, '작(酌)'은 '술을 따르다'이다. 어떤 상황을 어림잡아 헤아림을 표현할 때 왜 '술'과 관련된 글자가 사용되었는가. 술 하면 먼저 떠오르는 술병과 취기(醉氣)가 대답의 단초가 될 것 같다. 원래 '짐(斟)'은 술잔에 술이 넘치지 않게 따르는 것을, '작(酌)'은 술이 흘러넘치도록 많이 따르는 것을 의미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상반된 의미의 글자가 한데 어우러진 것일까. 술병에 그 이유가 숨어있다. 옛날 술을 빚어 마실 때 술병은 불투명했다. 당시 토기가 술병으로 쓰였다.
이 토기는 속이 보이지 않은 데다 손으로 잡기 쉽게 윗부분이 잘록하게 들어가(호리병) 술이 얼마나 들었는지 눈으로도 확인하기 무척 어렵다. 손으로 술병을 들어 적당히 어림잡아 헤아릴 수밖에 없다. 어림잡아 술의 양을 판단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 '술병'에서 '개인의 심정이나 사회적 상황'으로 확대되면서 본래 의미가 퇴색되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치밀하거나 꼼꼼하지 않다는 것에 있다. 대강 혹은 대충, 설렁설렁 헤아린다는 점이다. 특히 술을 마시면 취한다. 그러면 사리판단이 더 정확하지 않다. 술병 속이 보이지 않은 데다 술까지 취하면 더더욱 술이 얼마나 남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니 대강 헤아리거나 섣부르게 지레 남은 술의 양을 추측해 따르게 되니 술잔이 넘치거나 잔을 채우지 못 한다.
짐작하지 말아야 것이 있다. 백성들의 마음을 말이다. 불량한 정치는 정치인들이 백성들의 마음이 '이럴 것이다'라고 짐작하는 데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