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성(歸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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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성(歸省)
  • 충청투데이
  • 승인 2015년 09월 01일 19시 23분
  • 지면게재일 2015년 09월 02일 수요일
  •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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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낱말속 사연]김동우 YTN 청주지국장
귀성(歸省). 부모를 뵙기 위해 객지에서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옴을 뜻한다. 이 뜻대로라면 귀향(歸鄕)이라는 말이 더 옳지 않을까. '돌아가다'의 '歸'와 '살피다'의 '省'이 합쳐진 말이다. '歸'는 이해가 가지만 '省'은 다소 생뚱맞지 않은가, 도대체 돌아와 뭘 살피겠다는 것인가. 여하튼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연은 이렇다.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식 신교육이 보급됐다. 유교식 교육이 뒤로 밀리면서 많은 농촌 학생들이 질 좋은 교육을 받기 위해 신교육이 시작된 서울로 몰려들었다. 서울로 유학(留學)온 학생들은 방학이 되면 고향으로 내려갔다. 학비와 용돈을 챙겨야하고 서울 거주 비용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귀향이었다. 이들은 고향에 내려오면 무엇보다 선영이나 사당에 들어 조상에게 인사를 올렸다. 당시 일정기간 동안 외지에 나갔다 귀가하면 조상의 무덤을 찾아 인사를 올리는 것이 지켜야할 유교적 법도였기 때문이었다. 무덤이나 사당을 찾아 조상들에게 인사를 올리는 것은 성묘였다.

여기서 '귀향'과 '성묘'의 앞 글자만 취해 '귀성'이 탄생했다. 귀성 주체는 서울서 공부하는 농촌출신학생이었고, 때는 방학이었다. 대부분 학교들이 일제히 방학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대거 역으로 몰려 특급열차가 편성되기도 했다. 이른바 귀성열차는 1935년 처음 등장했다.

학생들이 방학을 맞아 고향을 찾아 성묘했던 귀성이 광복 이후 주체와 때가 바뀌기 시작했다. 가족을 떠나 일자리와 사회적 편의 등을 찾아 서울로 이주해 정착한 농촌 출신들과 명절로 말이다. 당시만해도 교통이 불편한데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 농촌 출신자들은 평소에는 고향을 가지 못하다 주로 명절에만 고향을 찾았다. 도로가 주차장이 되기도 하고 열차 역시 콩나물시루였다. 고향 가는 귀성행렬은 가히 민족의 대이동이었다.

그러니까 학생들이 방학 때 고향 가는 것을 일컫던 귀성이 광복이후 서울시민들이 명절 때 부모 집을 향해 서울을 벗어나는 유동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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