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와 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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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와 해장]
  • 나재필 기자
  • 승인 2016년 03월 09일 20시 02분
  • 지면게재일 2016년 03월 10일 목요일
  •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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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로]
▶소주를 마시며 멀미가 나는 것은 소주 때문이 아니다. 바람에 실려 온 멍게 향 때문이다.

멍게 굵은 놈의 배를 갈라 위새강과 아가미 주머니를 소주와 함께 입에 털어 넣는다. 입에서 바다가 출렁인다. 입수공으로 들어간 바다 향이 출수공으로 빠져나오며 향기에 무게를 싣는다. 쌉싸래한 향미가 술이 깰 때까지 입안을 감돈다. 여드름 자국 같은 돌기는 울퉁불퉁한 바다 조류를 견딘 '멍'이다. 물을 뿜어대는 모양이 남성의 생식기를 닮았다고 해서 우멍거지로도 불린다. 멍게 안주로 술을 마시면 다음날 머리가 ‘멍’하지 않다.

▶바다의 우유, 바위에 붙은 꽃(石花)으로 불리는 '굴'도 안주용으로 좋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굴튀김을 술안주로 즐겼고, 카사노바는 생굴을 하루에 50개씩 먹었다. 미네랄 성분이 성적 에너지를 자극하기 때문에 '사랑의 묘약'이기도 하다. 뽀얀 국물에 구수하면서도 진한 맛을 내는 대구탕도 괜찮다. 여타의 첨가물을 넣지 않고 소금으로만 간을 하면 그 맛이 깊고 그윽하다. 일명 싱건탕(지리)이다.

해풍에 꼬득꼬득 말린 과메기(말린 청어)도 별미다. 청정한 동해와 차가운 하늬바람이 어우러져 만든 검푸른 보석 안주다. 햇김, 물미역, 파, 마늘, 고추와 함께 먹으면, 입안에서 해풍이 분다. 맛대가리 없어보여서, 더 맛있는 홍어의 발효된 맛은 제대로 된 ‘똥맛’이다. 그 퀴퀴한 냄새 자체가 맛이다. 후각이 미각을 이끄는 몇 안 되는 안줏거리다.

▶해장으로는 물곰(물메기)탕이 괜찮다.

바닷바람에 빨갛게 언 볼처럼 불그레한 국물이 얼큰하면서도 달큼하다. 흐물흐물 못 생긴 생선에서 그만한 국물이 나오는 건 복이다. 신 김치를 넣고 끓여 먹는 물잠뱅이탕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까지 갖췄다.

무와 감자, 시래기를 깔고 양념장을 넣어 조린 참마자(잉어과 민물고기)는 원기를 돋우고 숙취해소에 좋다. 하지만 도다리쑥국을 따라갈 해장은 드물다. 도다리에서 우러나오는 뽀얀 국물과 연초록 햇쑥의 향미는 바람난 봄처녀처럼 상큼하고, 은은하며, 여운마저 길다.

▶우리가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서 '시원하다’고 말하는 건 역설이 아니다.

인간을 얼어붙게 만드는 빙점이 온점으로 가는 것이다. 그 안에 사랑, 원망, 증오, 복수, 용서 등이 녹아있다. 고춧가루(탕)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뜨거움과, 아랫배를 관통하는 냉소적 차가움은 이율배반적이지만, 온랭의 친교다.

그렇다면 이 시대 가장 맛있는 안줏거리는 뭘까. 어중이떠중이와 떠버리들이 모여 암투를 벌이는 정치와 정치인들 얘기다. 이 안줏거리는 씹어도 씹어도 질리지 않는다. 낡아가며 새로워지고, 새로워지며 낡아가는 술자리의 비애이기도 하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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